내 삶이 연극이 되다

3일 시민연극교실 첫 공연

2011-12-05     송지현 기자

"그 계집애가 우리 중에 제일 잘 나가. 원래 네가 제일 잘 나갔었는데."
'오랜만에 통화한 동창은 제 가슴을 후벼 파는 소리만 합니다.'


가끔 걸려오는 여고동창생의 전화에 속상해하다가 몰래 깊은 한숨 내쉬었던 기억이 한번쯤 있을 법한 나이, 40대. 남편에게 털어놓자니 이해를 못하거나 미안해할 것 같고, 동네 아줌마들과 수다 떨기에도 괜한 자존심이 발동한다.


이렇게 내 안에 꼭꼭 숨겨놓은 비밀스런 이야기가 연극 대사가 돼 날개를 달았다.


지난 11월 29일(화) 초겨울 어둠이 짙게 깔린 저녁 8시 구로아트밸리예술극장 지하 소강당. 연극 대본을 손에 쥔 10명의 배우들이 몸짓과 대사의 합을 맞추고 있다. 이들은 지난 9월부터 시작한 구로아트밸리예술극장 성인연극교실 수강생들. 모두 처음 연극을 접한 순수 아마추어 배우들로 주부, 직장인들로 이뤄졌다.
총 23회에 걸친 수업에서 몸과 소리를 다스리는 연습부터 이들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들어왔다. 이렇게 탄생한 연극 대본이 '로또 남편' '내가 젤 잘 나가' '엄마에게 드리는 노래'로 3편.


밀고 당기기를 반복하면서 만난 내 인생의 파트너 남편에 대한 고마움. 자꾸만 쪼그라드는 것 같은 중년 여성의 자신감 회복기, 생각해보면 늘 내 편이었던 엄마를 향한 가슴 찡한 사랑고백까지 우리 인생에서 잔잔하고 소중한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들어냈다.


공연을 코앞에 둔 이때쯤이면 대사 암기는 물론 무대 동선도 완성단계여야 하지만 여전히 대사도 생각나지 않아 눈을 질끈 감고, 무대 위 어색한 발걸음, 시선, 손동작에 쩔쩔 매고 있다. 그래도 연습하는 내내 즐거운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미키마우스 머리띠에 화려한 프릴 치마 어때요?"
"스타킹 신고 발그레하게 볼 화장도 해야지."


여장 남자배우의 무대 의상을 놓고 서로 자기가 갖고 있는 소품을 내놓겠다고 아우성이다. 이번 교실을 통해 처음 만난 이들이지만, 마치 오래된 친구들처럼 우스꽝스런 장난도 서슴지 않는다.

 
"요렇게 걸어볼까?" 한 참가자가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걷는 모습을 연출하자, 다들 뒤로 넘어간다.
무엇보다 이들에게 이번 연극교실은 인생 중반에 스스로에게 준 '선물'이라고 입을 모은다.


송규자(57, 개봉2동) 씨는 "새로운 인생을 만나보고 싶어 이 연극교실을 찾았는데, 이곳에서 새로운 도전, 새로운 친구, 새로운 취미를 더 얹었다"며 "서프라이즈한 삶에 행복을 느낀다"고 말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연극대본으로 만들어낸 백숙현(38, 개봉2동) 씨도 "주부로 육아와 살림만 하면서 살아오다가 재미있고 활력 넘치는 인생의 선물을 얻게 된 3개월이었다"는 소감을 전했다. 이들은 앞으로도 만남을 가지면서 '연극' 이야기를 계속할 것임을 약속했다.


이들의 설레는 첫 공연은 12월 3일(토) 오후 구로아트밸리 소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