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11주년 기획]'자영업 쇠퇴지역' 구로, 해결방안은

허리 휘는 자영업, 폐업 잇따라 지역사회 자치단체 네트워크화 시급

2011-03-14     송희정 기자

사업체조사보고서에 따르면 2009년 기준 구로지역 자영업자 수는 2만4,486명에 이른다. 구로지역 사업체(3만466개)의 80%정도가 자기책임 하에 독립적인 운영을 하는 자영업인 셈. 자영업이 돈이 되기 때문일까? 아니다. 거리에서 만난 자영업자들은 규모가 크건 작건 간에 하나같이 "허리가 휜다"라고 말한다. 자영업자는 임금근로자와는 달리 여러 위험을 자신이 책임져야 하기에 경기변동과 지역사회 환경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다.


 특히 발 딛고 살아가는 지역사회 환경변화는 자영업자들의 영업을 쥐락펴락하는 요인이다. 구로구 지역경제의 실핏줄을 이루는 자영업자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단순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를 벗어나 지역사회 공동체적 프레임을 통해 자영업 활성화의 길을 모색해본다.    <편집자  주>

 


 

 열 집 중 아홉 집은 폐업
 

이렇다 할 번화가가 없는 구로구지만 구로중앙로와 가마산로, 구로동로, 도림로에 에둘러 있는 구로2·4동 도로변은 구로의 대표적인 상가라인이다.

 이렇다 할 번화가가 없는 구로구지만 구로중앙로와 가마산로, 구로동로, 도림로에 에둘러 있는 구로2·4동 도로변은 구로의 대표적인 상가라인이다.


 특히 구로시장과 구로자율시장을 끼고 있는 구로동로는 70~80년대 구로공단이 번성했을 때 가리봉동과 연계돼 최고의 황금기를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흘러간 옛이야기가 됐다. 지금은 구로지역에서 자영업자의 개·폐업 빈도가 가장 높은 곳으로 손꼽힌다.

 C부동산 대표(63, 구로2동)는 "솔직히 내가 열 집 소개하면 그중 아홉 집은 망한다"며 "최근에 소개한 집도 2,500원 하는 칼국수를 100그릇 팔아야 25만원인데 그 돈 갖고는 가게 세는 고사하고 인건비도 안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일대 상점들은 한집 건너 하나씩 밥집 아니면 술집이다. H갈비 사장(50대, 구로4동)은 "3년 전 회사를 그만두고 먹는 게 남는 장사다 싶어 퇴직금을 몽땅 투자해서 음식점을 열었다"며 "주위에 음식점이 많아 경쟁이 심한데다 특화된 메뉴가 없다보니 단골 잡기도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번화가? 빛 좋은 개살구

 한신휴, 두산위브, 레미안 등 대규모 아파트단지에 접해 있는 구로3동 한신휴 상가라인은 최근 2~3년 사이 이 일대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번화가로 변모했다. 하지만 이곳 자영업자들의 체감지수는 여타 지역과 별반 다르지 않다.


 R상점 대표는 "장사가 잘 되는 것처럼 보여도 빛 좋은 개살구"라며 "주인장이 기본 월급도 못 갖고 가는 집이 태반이다"고 말했다.


 오류1동 오류역 앞 경인로변 상가라인. 최고 노른자위 10평짜리 상점의 권리금이 1억4,000만원에 이르는 이곳은 과거 부천, 광명 사람들까지 몰렸을 정도로 경기권과 서울 서남권의 대표적 상권으로 손꼽혔다. 하지만 오류시장과 삼익쇼핑의 쇠락으로 지금은 겨우 현상유지만 가능한 지역이 됐다.


 O부동산 사장은 "어쨌든 가게 세는 안 밀리고 있지만 그렇다고 앞으로 더 좋아질 거라는 기대도 없다"면서 "나가고 싶어도 투자한 인테리어비용과 권리금이 적잖아 그냥 깔고 앉아있는 집들도 여럿이다"고 말했다.


 밤이면 손님들로 북적이는 먹자골목 상인들도 비슷한 하소연을 잇는다. "식재료 값은 천정부지로 오르는데 고기값을 올릴 수도 없고 요즘 같으면 정말 힘들다"는 K고깃집 사장(40대, 오류1동)은 "그래도 우리는 분양받은 가게라 견딜 만하지만 주변에는 월세 내면서 하루 세 테이블밖에 못 받는 고깃집도 있다"고 말했다.
 
 자금지원 문턱 높고, 비현실적
 자영업자들은 중소기업육성기금과 신용대출 등을 통해 업체당 최고 5천만원까지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자영업자들은 이들 지원사업의 높은 문턱 앞에서 언감생심 꿈도 못 꿔보기 일쑤다.


 Y설비 대표는 "얼마 전 무담보 신용대출이라기에 2천만원을 대출받으러 갔는데 무담보라면서 건물등기부등본을 떼 오라고 했다"며 "이는 집 없이 월세 내고 장사하는 사람들은 아예 대출받을 생각을 하지 말라는 얘기와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다행히 소유 건물이 있어 대출을 받았는데 은행수수료라며 60만원 떼이고, 1년마다 신용도조사료로 또 떼이고, 이자 4% 떼이는 등 떼 갈 건 다 떼 가는 통에 이게 무슨 지원인가 싶었다"고 말했다.


 지원제도의 비현실성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R유통 대표는 "상가보증금의 60%까지 담보대출을 해주는 지원제도가 있는데 이를 이용하려면 건물주의 담보설정 동의가 필요하다"며 "요즘 같은 불경기에 그러한 일을 흔쾌히 동의해줄 건물주가 몇이나 되겠느냐"고 말했다.

 구로구는 자영업 '쇠퇴지역'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이 지난 2월 7일 펴낸 '서울시 자영업 특성과 정책적 지원 방향'이라는 제목의 정책리포트에 따르면, 2000~2008년 기간 중 구로구 자영업체의 연평균 성장률은 -0.8%로 서울시 평균(-0.6%)을 밑돈다.


 또한 자영업체 비중과 성장률을 감안한 특화도 분석에서 구로구는 영등포구, 용산구 등 부도심과 함께 '쇠퇴지역'으로 분류됐다. 반면, 도봉구와 노원구 강북구와 강서구, 양천구는 '성장지역'에 포함됐다.


 지역경제 살리기에 뜻 있는 인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구로지역 자영업의 쇠퇴는 지역사회 환경변화에 크게 기인한다. 이들은 최근 몇 년 사이에 이룩된 지역개발이 서민경제의 핵을 이루는 자영업자들의 성장과 연동되지 않음에 주목한다.


 하재윤 구로자율시장 상가조합장은 "아파트 입주자들은 자신들의 사회경제적 위치를 중산층으로 여기기 때문에 대형마트나 백화점을 찾지, 급하게 필요한 물품이 아닌 다음에야 인근 중소형점포에서 소비하려 하지 않는다"며 "구로에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건설돼 인구가 늘면 자영업자의 생활도 좋아질 거라 말하지만 이는 절대 차원이 다른 얘기"라고 말했다.


 고척근린공원 서쪽 고척로 상가라인은 규모는 작아도 알짜배기 상점들의 밀집도가 높은데다 고척근린시장을 끼고 있어 고척2동과 개봉1동 주민들이 자주 이용하는 곳이다. 하지만 이곳 역시 주변지역 개발로 인한 직격탄을 맞고 있다.


 고척근린시장의 한 상인은 "최근 개봉1재개발사업이 본격화하면서 주민들의 이주가 늘어 이 일대 인구가 눈에 띄게 줄었다"며 "그 때문이 아니더라도 직장맘이 늘고 주택가 곳곳까지 마을버스가 다니면서 이들은 대부분 개봉역 인근에서 쇼핑을 끝낸 뒤 마을버스를 이용해 곧장 집 앞까지 이동한다"고 말했다.
 

  공동체 프레임 통해  해법 모색돼야
 상황이 이렇다보니 지역경제 살리기에 뜻 있는 인사들 사이에서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를 넘어 공동체적 프레임을 통해 대처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창주 구로중소상공인협의회 회장은 지역 순환형 경제시스템의 도입을 제안하고 나섰다. 정 회장은 "구로지역경제가 살아나려면 아파트와 고층빌딩이 올라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구로에서 삶터와 일터를 일구는 자영업자들을 살리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며 "그들의 지갑이 두둑해져야 지역 내 소비가 활성화되고, 이는 다시 자영업자들의 서비스 향상으로 이어져 결국 생산자와 소비자가 모두 윈-윈하는 건강한 지역경제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지역 자영업자들의 생존문제를 특수 계층만의 이해관계가 아닌 지역사회문제로 전환시켜 민관 협력을 통한 지역경제 살리기 캠페인을 도입해야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 인천에서는 2007년 '대형마트 규제와 시장활성화를 위한 부평상인대책협의회' 창립을 시작으로, 이듬해 '대형마트 규제와 소상공인 살리기 인천대책위원회'가 발족돼 대형마트 규제는 물론 재래시장과 상점가상인, 직능단체, 시민단체, 지역주민, 정치권이 연대해 대형마트 규제는 물론 소비자운동과 지역경제 살리기 운동이 다각적으로 펼쳐진 바 있다.


 지역경제 살리기에 뜻 있는 한 인사는 "최근 들어 자영업자의 문제를 지역사회 문제로 확대해 공동체적 프레임을 통해 활성화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지역사회 내부에서 점차 공론화 되고 있는 분위기"라며 "새롭게 던져진 이러한 화두가 단순 구호나 캠페인에 그치지 않으려면 자영업자는 물론 시민사회단체와 자치단체가 결합돼 견고한 네트워크 하에서 이 문제의 해법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