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209] (사) 솔아 서도선소리산타령 보존회 (구로2동)

민요로 인생도 행복도 '활짝'

2010-09-08     송지현 기자

 구성진 민요가락에 담긴 한국인의 한과 정 그리고 흥겨움을 외면할 사람이 있을까. 한 자락쯤은 흥얼거릴 정도로 민요는 우리생활에 가깝게 맞닿아 있다. 그러나 서양 음악과 가요에 밀려 대중으로부터 점차 멀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


 솔아서도선소리산타령보존회(구로2동, 이하 서도소리보존회)는 국악의 대중화와 저변 확대를 위해 설립된 단체로 지난 4월 서울형 사회적기업으로 지정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고 있다.

 서도소리보존회 전미경(39, 구로5동) 이사장은 "국악을 널리 알려 사람들이 국악의 재미에 흠뻑 빠져들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1999년 3월 솔아소리 민요단을 창단했고, 2008년 5월에는 사단법인을 설립했다. 구로에 둥지를 튼 지도 벌써 15년째에 접어들었다.

 서도소리는 평안도와 황해도의 전통 민요로 기질이 강한 서도지역의 특성을 담아 꿋꿋하고 씩씩한 기상이 있는 노래로 가락에 북한 사투리의 느낌을 담고 있다. 흔히 알고 있는 판소리는 전라도를 중심으로 한 남도소리를 뜻한다고. 산타령은 산천의 경치를 주로 담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예능보유자인 김광숙 선생으로부터 2005년 서도소리를 이수 받은 전미경 이사장은 민요인들 중에서도 몇 안되는 서도소리 이수자다.

 서도소리보존회는 서도소리뿐만 아니라 국악의 대중화를 위해 무료 민요강좌를 열고, 구로구의 경로당, 도서관, 복지관 등에서 다양한 자원봉사, 강습을 하고 있다. 국악이 필요한 공연이라면 마다하지 않고 활발한 공연도 펼치고 있다. 서울 남부권에서는 유일한 국악학원을 만들어 민요강사 자격증 취득을 위한 교육과 단소, 장구, 해금 등 전통악기 강습에도 힘쓰고 있으며, 앞으로는 학교의 방과후교실에도 적극 진출할 계획이라고.
 

서도소리보존회는 외국과 수교활동에도 나서고 있는 민간외교사절단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2005년 UCLA 초청 미국방문 순회 공연을 시작으로 중국 순회 공연, 한독수교 100주년 기념 슈투트가르트 공연, 인도차이나 초청공연 등 세계 각지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고 2009년에는 한-베트남 수교 17주년 기념 전통음악교류 공연을 주최하는 성과까지 이뤄냈다.

 이 과정을 모두 전미경 이사장을 중심으로 서도소리보존회원들이 스스로 해냈다. "북한에서조차 맥이 끊긴 서도소리를 이어가고 있는 자부심이 있어요. 하지만 국가나 구로구 등의 지원은 전무해 안타까워요. 전통음악, 국악 보존은 말로 외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 지원이 있어야 하지요". 전미경 이사장은 부족한 전통문화예술 지원 정책에 대한 아쉬움을 나타냈다.

 


 

 "나이 80에 민요 강사 될 줄이야"

 

구로에서 유일한 문화예술분야 사회적기업으로 선정되면서 이곳에서 일하게 된 직원들은 민요강사 자격증을 갖춘 이들이고, 구로구 주민들도 적지 않다.


 민요 경력 10년이 넘었다는 이승화(81, 구로2동) 씨는 "나이 80에 이력서를 쓴 것은 내가 생각해도 대단해요. 취미로 시작해 이제 강사로 나서니 주변에서 부러워하죠. 이 나이에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것도 민요를 열심히 부른 덕이 아닌가 싶어요"라며 민요 예찬론을 펼쳤다.

 60대 이상 직원이 많은 가운데 '젊은' 언니 허복자(45, 구로1동) 씨는 민요 입문 2년차의 신입생격.

 "나이 들어서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이 뭘까 고민하다가 민요를 접하게 됐어요. 나이 들어 더 흥겹고 즐거운 민요가 답이었죠"라며 80세 넘어서까지 이 일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김옥례(62, 궁동) 씨는 민요로 인생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30대에 큰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1996년 전미경 이사장을 만나 민요에 빠진 후 건강을 되찾았어요. 혈액순환도 잘되고, 굽었던 어깨도 어느 순간 확 펴져 있더라고요. 매일 늦어도 남편이 잔소리 한번 안해요. 집에 있으면 왜 안 나가냐고 채근할 정도예요. 민요를 만나지 않았으면 지금쯤 이불 뒤집어쓰고 병치레를 하고 있을 걸요."

 민요로 베푸는 삶을 살고 있는 것도 행복이라는 최승자(63, 온수동) 씨.

 "복지관에서 치매 어르신들과 함께 소고도 치고 노래도 부르는 봉사를 하고 있어요. 민요를 같이 부르면서 즐겁게 시간을 보낸 뒤 그 분들의 상태가 호전되거나 치료가 잘된다는 얘기를 들을 때 보람이 아주 크죠."

 나이든 어른들이 늦게 배운 민요가 동네 봉사로만 그치거나 아마추어급 공연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대부분 강사자격증을 갖춘 이들이고, 그 가운데 김옥례 씨, 안선영 씨는 명창 칭호를 받은 실력자들이다. 이들은 2003년 제주 KBS 주최 전국민요경창대회서 문화부장관상을 수상하면서 명창 칭호를 받았다.

 특히 안선영(62, 고척2동) 씨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지난해 원광대 사이버대학 전통공연학과에 입학해 제대로 전통공연 전문가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민요강사 자격증은 물론 공연을 더 잘하기 위해 레크리에이션 자격증, 웃음치료자격증도 땄다. 지금 다니고 있는 학교를 마칠 때면 전통음악 실기교사 자격증까지 갖추게 된다.

 이들은 사회적기업 지정 후 직원으로 입사해 만난 사이가 아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스승과 제자로 인연을 맺어오면서 단단하게 다져진 돈독한 정으로 뭉쳐있다. 요즘은 매일 사무실에서 식사당번을 정해 밥을 나눠먹는 '식구'로 집에서 만든 밑반찬도 나르고, 맛난 음식이 있으면 서로 챙기느라 바쁘다.

 "무료 민요강좌를 듣는 수강생들도 올 때마다 부침개, 음료, 과일 등을 싸들고 와서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노래를 부르는 재미는 어느 곳에서도 느낄 수 없는 행복"이라고 이들은 입을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