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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동 산신제 서낭당 … 잊혀지는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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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동 산신제 서낭당 … 잊혀지는 이야기들
  • 송희정 기자
  • 승인 2010.04.05 15: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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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기획 - 구로를 걷다 5 항 동 세 번째 이야기

 

▲ 마을회관 옥상에서 내려다본 항동마을. 왼쪽에 보이는 산이 3년 전까지 산신제를 지냈던 마을뒷산이고, 오른쪽에 보이는 산이 건지산이다.

 

 

  버드나무에 연둣빛 고운 너울이 출렁인다. 담장 아래 개나리 노란 꽃망울은 터질듯 물씬 다가온다. 볕 좋은 날 찾은 항동은 천지사방이 봄기운으로 가득하다.


 자연에 기대 살아가는 사람도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건지산(乾芝山) 자락에 깃든 크고 작은 밭에서 농부들이 봄 농사 채비에 한창이다. 연장으로 북돋고 고랑을 내며 지나간 자리에서 흙내가 진동을 한다.


 "건지산 오르려고? 기다려봐, 같이 가자고. 혼자선 안 돼."


 감자 씨 뿌리던 유재억(63) 통장이 흙 묻은 장갑을 탁탁 털며 기다렸다는 듯 앞장을 선다. 길게 늘어선 밭들을 뒤로하고 산비탈로 오르자 키 큰 아카시아나무들 사이로 희미하게 길의 흔적이 드러난다. 버스도 안 들던 시절 천왕동을 왕래하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올랐던 곳이지만 지금은 항동 토박이들의 눈에만 보이는 잊혀진 길이 됐다.
  
 

 

▲ 흔쾌히 건지산 안내자 역할을 해준 유재억 통장. 손으로 짚고 있는 나무 아래가 옛 서낭당이 있던 자리다.

 

 

  "별이 무지하게 좋은데 황사 땜에 잘 안보일거야. 확 트인 날엔 멀리 인천 송도바다와 남산타워도 보여. 이 산이 이래 뵈도 서울의 관문 격이거든. 육이오 인천상륙작전 때 북한군이 서울을 사수하기 위한 최전방도 여기였어."

 
 정상에 오르자 맨 먼저 눈에 담기는 풍경은 나뭇가지 사이사이로 보이는 항동마을이다. 대륙을 건너온 황사도 산자락에 둘러싸여 어여삐 들어앉은 항동의 지세를 감추진 못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 했다. 산 아래 한옥과 양옥을 가르는 구불구불한 골목에는 350년을 간직한 옛이야기가 펼쳐지고 산자락에 기댄 농지에는 한평생 흙과 함께 살아온 이곳 어르신들의 주름진 얼굴들이 어린다.


 서울역 확장공사로 강제이주당한 철거민들이 80년대 건립한 매화빌라 쪽으로 앞내깔(항동~인천을 지나는 내)이 흐르고, 구로구가 부천화장장 건립에 대한 맞불로 쓰레기집하시설을 짓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망골은 먼지 폴폴 나는 도로 공사장으로 변했다.


 옛 농사시험소 앞마당 350년 된 느티나무는 항동수목원아파트 건립으로 뿌리가 뽑혔고, 마을을 수호해온 서낭당은 신령스럽던 옛 모습을 잃고 무너진 돌무덤만 남았다. 3일 동안 항동을 걸으면서 보고 듣고 만난 모든 것들이 발치아래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산을 내려와 항동어린이집을 찾았다. 카메라 앞에서 꾸밈없는 웃음을 짓는 항동의 아이들이 헛헛해진 마음을 위로해준다. 이 아이들이 자라서 마주할 항동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아니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지역사회구성원 모두의 숙제여야 할 고민거리를 싸안고 돌아와 글을 쓰는 지금 정부의 항동 개발계획이 발표됐다.

 

 

▲ 항동어린이집의 아이들. 이들이 자라서 마주할 항동의 미래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개발로 인해 무참하게 파괴될 항동의 역사와 문화, 공동체성, 자연을 떠올리며 몸서리치는 건 혼자만의 기시감인가. 항동의 진정한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

 

☞ 도 움 말 :   김영봉(78) 항동노인회장        유재억(63) 26통 통장         김기순(80)옹

 

 

 

◈ 이 기사는 2010년 4월 5일자 구로타임즈 신문 344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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