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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동은 꿈꾼다… '착한 개발'의 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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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동은 꿈꾼다… '착한 개발'의 꿈을
  • 송희정 기자
  • 승인 2010.04.05 14: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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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기획 - 구로를 걷다 4 항동 두 번째 이야기

   모든 개발이 나쁜 건 아니다. 좁은 골목을 정비하고, 낡은 집을 새 단장하고, 기반시설과 주민편의시설을 들이는 개발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위해 꼭 필요한 조건이다. 문제는 토건족과 투기꾼의 배를 불리는 개발이냐, 사람이 살기 위한 개발이냐에 있다. '착한 개발'은 불가능하다고 고개를 절레절레하는 이들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에게 부족한 건 개발 관련 해박한 법지식이나 수익을 따지지 않는 개발업자가 아니라 상상력과 인내력이 아니겠느냐고. 대안을 꿈꾸고 그 대안을 현장에서 끈덕지게 찾아가는 사람들은 이미 서울 삼성동과 부산 물만골, 통영 동피랑, 대전 판암동 등지에서 '착한 개발'의 꿈을 현실화하고 있다.
 
   불쑥 찾아온 낯선 손에게 달고 시원한 식혜 한 사발을 내어준 김영봉(78)·권일순(75) 노인회장 부부는 '착한 개발'의 그림을 이렇게 그린다.

 

▲ 명절이면 젊은 처녀들이 줄을 묶어 그네를 탔던 350년 된 회나무. 옆으로 보이는 집이 김해김씨 경사파 참판공 종가인 김영봉 회장 댁이다.


 "여긴 우리네가 350년을 영유한 삶의 보금자리야. 싹 덜어내고 아파트 앉히면 이 마을 사람 몇이나 들어가 살 수 있게? 이 산 전부 감아서 수목원 만들면 여긴 한울타리 같이 들어앉게 되거든. 그럼 도로 넓히고 도시가스 들여 살던 사람들은 그 터에 살게 해주고 전원주택단지처럼 조성해서 살아도 좋거든. 그래 살았으면 좋겠어. 여기 사람들하고 오래도록."

 


 김해김씨 경사파 참판공 종가인 김 회장 댁의 9대조는 정2품 문과 승지벼슬을 하면서 왕에게 항동 땅을 하사받아 이곳에 집성촌을 이뤘다. 이후 순응 안씨, 밀양 박씨, 전주 이씨 사람들이 연이어 들어와 네 개 성(姓)이 처마를 맞대고 도탑게 살아가는 마을이 됐다.
  
   마을의 오랜 역사만큼 발길이 닿는 한 곳 한 곳이 모두 보물이다. 김 회장 댁 옆을 지키고 선 회나무의 나이는 마을의 나이와 같다. 김 회장의 9대조께서 정착할 때 손수 심으셨다. 그 옛날 명절이면 젊은 처녀들이 이곳에 줄을 묶어 분홍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그네를 타곤 했다. 건지산(乾芝山) 아랫녘 야트막한 산은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산신제를 지냈던 곳이다. 음력 10월 초닷샛날이면 신당이 있던 산 중턱에서 1년 농사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산신제를 행했다. 1년을 무탈하게 지낸 이를 제주로 삼고 선당주와 앉은당주를 정해 돼지를 잡고 떡을 쪄서 주민 합심으로 이고지고 산으로 날라 정성스레 제를 올렸다. 그리고 제가 끝나면 마을로 돌아와 주민 모두와 음식을 나누며 정을 나눴다. 이날만은 모두 똑같은 마음으로 항동마을의 평안을 기원했다. 하지만 사심이 깃들지 않은 정갈한 마음으로 감사와 평안을 기원하던 축제의 장은 젊은 사람들이 대처로 빠져가면서 '뚝' 맥이 끊겼다.

 

☞ 도 움 말 :   김영봉(78) 항동노인회장       

                      유재억(63) 26통 통장        

                      김기순(80)옹

 

 

 

 

▲ 김영봉·권일순 부부. 권일순 옹은 스물여섯에 시집와 1년에 기제사만 열 번 지내는 종갓집 큰살림을 꾸려왔다.

 

 

▲ "아이고 엄청나게 물어보네. 그만 물어." 매섭게 내치는가 싶다가도 살포시 웃음을 지어보이시는 김기순(80) 옹. 항동에서만 50년을 사셨다.

 

 

 

 

 

 

◈ 이 기사는 2010년 3월 29일자 구로타임즈 신문 343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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