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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2동에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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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2동에 산다는 것
  • 구로타임즈
  • 승인 2009.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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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토요일 오후인 듯… 늦은 점심을 먹고 늦봄 늦은 오후의 게으른 몸을 주체하지 못한 채, 잡초가 무성한 녹슨 철길을 따라 항동저수지를 향하고 있다.

 아직 아카시아 잔향이 남아있는 저수지 부근 철로변에는, 따갑지 않은 봄햇살이 나무숲 사이로 바람 따라 일렁이고, 바람은 서녘을 향해 해를 마주보며 줄달음치며 등을 떠밀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가족끼리 친구끼리 연인끼리 삼삼오오 짝을 지어, 한가로이 철길 산책로를 따라 걷다가 복사골(부천)로 계속하여 나아가고, 한 무리는 논둑길을 걸어 저수지를 향하여 즐겁고 유유자적한 산보를 계속하고, 또 한 무리는 천왕산 산속 항동약수터를 향하여 발걸음을 옮겨간다.

 맑은 날 늦은 오후에 쉽게 볼 수 있는 이런 낯설지 않은 풍경은, 사시사철 매우 춥지 않거나 비바람이 치거나 하지 않는다면, 흔히 눈에 띄는 아름답고 정감 있는 소박한 정경인데, 천왕동과 항동 마을사람들의 평범한 일상 풍속도라 할 수 있다.

 옛날에 천왕사라는 절이 있어 천왕동(天旺洞)이라 하였고, 마을이 배 모양처럼 생겼다 해서 항동(航洞)이라 하였단다. 동네 남쪽 끝에는 자연하천인 개화천이 흘러 산수를 겸비하고 있다. 본시 천왕동과 항동이 모여 행정동인 오류2동을 이룬다.

 아직 서울에서 몇 안 남아있는 자연부락이 천왕동과 항동이다. 이 동네는 태반이 그린벨트로 남아 있어 자연경관이 그다지 훼손되지 아니한 천혜의 자연녹지공간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이곳은 항동수목원으로 지정되어 있고, 최근 주변 정비공사가 조금씩 진행되고 있어 상쾌한 기분이 든다.

 한 때 어디선가 예의 철길 산책로를 활용하여 레일바이크를 운행하여 관광상품으로 활용하겠다는 발표도 있었다.

 오류동 삼거리에는 어쩌면 고증을 거쳤을지도 모를(?) 옛날 주막거리객사 미니어처(miniature)가 언제부턴가 고즈넉이 오류동 삼거리 한 켠을 지키며 객수에 젖은 나그네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이런 우리 동네에 개발바람이 불어 마을 한쪽의 자연얼굴을 확 바꾸고 있다. 영등포교정시설 공사, 도시개발공사 임대주택단지 조성공사 등으로 산허리가 잘리고 도로가 나고 나무숲이 해체되고, 자연부락은 산산조각이 나서 건축폐기물로 전환되어 어디론가 계속하여 실려가고 있는 실정이다.

 천왕동 교정시설 이전 예정지에 사는 주민들은 밤낮없이 생존권을 위해 외치고 있는데 우리들은 무엇을 해줄 것이 없어 고민에 놓여 있듯, 공사장 기계음·굉음은 우리들의 평온한 마음을 더 더욱 산란하게 만들고 있다.

 지금 항동과 천왕동에는 늦은 오후의 일상의 여유, 그리고 생존권과 굉음이 범벅이 되어 치열한 우리들의 삶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데, 뜨거운 여름으로 달려가고 있는 계절에 나는 어느 삶의 갈피를 부여잡고 있는지 모를 혼돈의 지점에 외로이 서있다.


■ 안병순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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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병순 시민기자는 현재 오류2동 주민이며, 지난 20여년간 오류1, 2동에서 살아왔습니다. 구로구청 해직 공무원으로 현재 민주공무원노조 구로구지부 정책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 이 기사는 2009년 5월 25일자 302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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