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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이야기 50]야학(夜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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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이야기 50]야학(夜學)
  • 김윤영기자
  • 승인 2007.04.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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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공단의 역사와 함께 번성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던 야학(夜學). 일제시대 이던 1920년대부터 나타난 야학은 시대에 따라 그 모습과 형태도 다양하게 운영돼왔다.

서울의 다른 어느 지역보다 야학의 역사가 깊은 곳이 구로구. 70년대 구로공단과 함께 구로지역 야학의 역사도 본격화됐다고 할 수 있다.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열악한 노동환경속에서 노동자들의 권리의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야학은 검정고시공부를 위한 야학에서부터 생활야학, 노동야학, 자취방야학 등 목적과 운영방식 등에 따라 다양한 야학들이
존재했다. 이 가운데 구로에서는 구로공단을 중심으로 노동야학이 주를 이루었다고 한다.

섬유와 봉제가발등 경공업이 주를 이루던 70년대 구로공단 근로자의 절반이상을 채우던 여성들은 ‘공순이’이라는 비웃음을 감내하며 고향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졌고, 이들 중 상당수는 새벽부터 밤늦도록 일을 하며, 배움 등에 대한 목마름으로 야학을 찾아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기도 했다.

당시 야학은 사회문제 해결의 주체로서 노동자 등의 자각과 실천의지 각성을 위한 의식화 교육이 주가 되고, 교육기회 제공이란 측면에서 진행됐다. 공장 노동자나 일반 연소노동계층, 빈민자제 등을 대상으로 했으며 노동운동에 관심을 갖는 학내나 교회대학생, 청년운동가 등이 야학을 이끌었다. 교육내용도 노동문제 사례 및 노동법부터 사회과학으로 바라본 역사정치교육, 일반지식, 문화교양 등이 주를 이루었으며 주로 교회 등에서 많이 진행됐다고 한다.

지역내 야학사에서 대표적인 곳이 은일정보산업고(구로2동 소재). 구로공단설립과 함께 70년대부터 80년대까지 공단 여성노동자들을 위한 야학으로 들어서 번성을 누렸던 것. 이외에도 크고 작은 야학들이 동네 곳곳에 자리를 잡고 운영되다, 80년대 후반부터 뿔뿔히 흩어져 지금은 구로지역 야학의 역사에 대한 자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은 상태다.

서울 경기야학협회가 발행한 ‘야학21’에 따르면 아직 서울에 남아있는 야학은 약 35개.

구로지역내에서는 92년부터 배움에 목마른 이들을 위해 운영되고 있는 섬돌야학(구로5동소재)이 유일한 편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운영상의 어려움으로 주위의 많은 관심이 필요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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