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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이야기 47]고척교(高尺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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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이야기 47]고척교(高尺橋)
  • 김윤영기자
  • 승인 2007.03.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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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을 이어주는 다리

안양천으로 나뉘어진 구로의 <갑>지역과 <을>지역을 연결해주는 다리는 고척교, 오금교, 안양교 등 크게 3개의 교량이 있다. 그 중 고척교는 조선시대 이전부터 안양천으로 나뉘어진 경기권과 서울권 사람들의 유일한 통로로 활용된다.

고척교는 고척동 62 ~ 구로동 636번지까지 연장 203m, 총 폭 37.5m, 유효 폭 36m, 높이 4.2m로 경인로에서 제일 큰 교량이다. 교통량만도 무려 8만여대가 넘으며 왕복 8차선의 안양천위에 경인국도 46번 도로를 연결하기 위해 1970년 12월 착공해 1997년 확장 준공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고척교는 조선시대 기탄교(崎灘橋)또는 기탄석교(崎灘石橋)로 불렸다. 동국여지승람의 금천현 기록을 보면 ‘기탄교는 현의 북쪽으로 15리에 있는데 서울에서 인천, 부평으로 통한다. 모두 돌로써 만들어졌다’고 기록돼 있다.

또 조선후기 1871년(고종 8년)에 작성된 부평군 읍지에 실린 고지도에는 거의 모든 대로 및 소로가 이 기탄석교와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으며 ‘부평부의 동쪽 30리에 기탄석교가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최소한 조선시대 이전부터 현재의 고척교 부근에는 전부가 돌로 만들어진 기탄석교가 유일하게 존재했음을 증명하고 있다.

때문에 고척동은 안양천을 이용한 무역의 중심지의 역할을 했으며 일부 사학자들 사이에서는 안양천이 고대 소금의 통로로 사용됐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현재 돌로 만든 기탄석교를 기억하는 이는 없지만 고척교에는 1950년경 나무로 만든 목조가 있었으며 이 목조는 상당히 낡아 계속 보수해 사용하다, 결국 1962년 당인리 발전소 터빈을 싣고 지나던 트레일러차의 하중을 못 견뎌 목조가 부서지는 바람에 콘크리트 교량으로 바뀌었다.

근래에는 가린열다리 또는 갈탄교라 불리어지다 고척동에 있다고 해서 고척교로 명칭이 바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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