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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이야기 30]유진오 별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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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이야기 30]유진오 별장터
  • 김윤영기자
  • 승인 2006.10.3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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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화재로 소실 터만 남아
▲ 유진오 선생이 작품활동에 몰두했던 양옥집.

올해로 탄생100주년을 맞는 현민(玄民) 유진오(兪鎭午)선생(1906~1987) . 해방직후 제헌국회에서 헌법을 만드는데 유일한 헌법학자로 참여한 유진오선생은 초대법제처장, 고려대총장, 신민당총재등으로 다채로운 활동을 편 인물이다. 문학가로는 ‘김강사와 T교수’등의 소설로도 유명하다.

‘전방위적 지식인’으로까지 불리던 유진오선생은 구로지역과도 인연이 깊었다. 궁동저수지 뒤편(산1-3, 서서울생활과학고 뒤 경기도 부천시와 경계한 인근)에 현민(玄民) 유진오(兪鎭午) 선생 소유의 임야에 토막집이 한 채 있었는데, 일명 유진오 별장이라고 불리는 이 집은 1989년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로 인해 대부분이 불타고 현재 그 터만 남아 있다.

이곳은 궁동 성지골의 가장 안쪽에 수렁고개로 올라가는 단이진 경작지 일대로 유진오선생이 작품 구상을 위하여 기거하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현재는 별장이 있던 자리는 빈 공터로, 주위에 둘러싸인 커다란 나무에서 낙엽만이 떨어져 쌓이고 있다.

하지만 이 별장 터로 가는 인근 산 중턱에 유진오 집이라는 별장 형태의 조그만 양옥이 일부 남아있다. 유진오 선생이 산책하러 내려와 이따금 기거하면서 글을 썼던 곳이라 전해지는 이 양옥집은 붉은 벽돌로 건축돼 집 내부에 페치카(* 러시아의 전통적인 난방․취사 겸용 난로를 말하며, 넓은 뜻으로는 난방용으로 실내에 설치된 벽돌조 또는 내화블록조의 난로를 총칭)가 있어 그림 속의 한 장면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는 다 부서지고 뽀얀 먼지와 함께 그 형태 정도로만 ‘이런것이 있었겠구나’ 정도 가늠해 볼 수 있을 뿐이다. 15년 전부터 한 주민이 양옥집 옆에 새로운 주거공간을 마련해 거주하고 있어 주변에 묻지 않으면 유진오 선생님의 손길이 미쳤던 곳인 줄 모르고 지나칠 수 있다.

문학가로서의 유진오선생은 1927년경부터 ‘조선지광’ ‘현대평론’ 등에 작품을 발표하면서 소설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해 특히 프롤레타리아 문학과에 동조, ‘메밀꽃 필 무렵’으로 알려진 이효석 선생과 더불어 동반자 작가로 활동했다. 1920년대 빈민층의 생활을 주로 그리는 작품 ‘귀향’, ‘여직공’ 등의 작품에 그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그리고 1930년대 중반 이후에는 ‘김강사와 T교수’ 등 지식인물을 다룬 세태소설(사회의 어떤 단계의 추이나 양상을 진실성 있게 그리는 것)의 성격이 짙은 작품을 그렸다.

유진오 선생이 구로에 머물며 작품활동을 했던 정확한 기간이나 작품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도 빈공터가 되어 버린 별장터를 찾아보면 유진오 선생이 작품에 몰두했을 모습이 생생히 그려지곤 한다.


❚참 고 문 헌
* 구로구지(구로구 발행, 1997년) * 두산세계대백과사전(두산동아, 1996년 )
* 서울특별시 문화유적 지표조사 종합보고서 (서울역사박물관,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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