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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이야기 10] 온수동 온수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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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이야기 10] 온수동 온수이야기
  • 김윤영기자
  • 승인 2006.05.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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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때 온천수로 유명

온수(溫水). 더운물이 나왔다는 온수골에서 유래된 동 이름이다.

세종실록(조선 세종(재위 1418~50) 때의 역사를 기록한 책)에 이와 관련된 기록이 남아있다. ‘임금께서 부평에 온천이 있다는 말을 들으시고, 조정의 신하를 여러 차례 보내서 찾아보라고 했으나, 그곳 아전과 백성들이 숨기고 말을 듣지 않으므로 도호부를 폐하고 현으로 강등한다’고 기록돼 있다.

피부병이 있었던 조선의 4대왕 세종대왕은 온양 등으로 온천욕을 다니면서 효험을 봐 가까운 곳에 온천 할 곳을 찾기 위해 온수지역을 탐색하게 했던 것이다. 그런데 주민들은 온천수가 나오면 온천욕을 하기 위해 피부병 환자가 몰려들고 넘쳐 나온 온천수가 논에 극심한 피해를 주기 때문에 온천수 맥을 막아 버리고 보고하지 않았다고 한다.

1920년 일제시대에도 온천을 찾기 위한 작업들이 이뤄졌으나 찾지 못했다고 한다. 69년, 70년, 85년 계속된 탐사도 실패로 돌아가다가 2000년 7월 5일 교통안전공단 부지를 탐사한 결과 온천 부존이 확실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당시 탐사를 맡았던 수맥탐사 전문가 유준혁씨에 따르면 “온수동은 따뜻한 물이란 뜻으로 이유가 있어 그런 지명이 붙게 된 것”이라며 “그러한 근거가 있어 당시 교통안전공단 측 요청에 의해 온천 수맥을 검사하게 됐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탐사로 인해 온천 부존이 확실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규모로 어떻게 온천지대가 형성돼 있는지 그 효험이 얼마큼인지는 정밀 조사가 필요하다고 한다.

온수동은 온천수가 발견된 온수골 외에도 능안, 터골, 삭새, 갈매 등의 여러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고려 건국 이후에 능이 생겼다고 전해지는 능안, 깊숙하게 생긴 골짜기 사이를 의미하는 삭새, 골짜기가 습하고 갈대가 많아 갈매라고 불렸던 이름까지. 온천수가 나왔다는 온수골도 이제는 숫자 몇 개로 표시돼 우체부 아저씨가 일하기는 쉽지만 온수를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잊혀져 가는 정겨움이 아쉽기만 하다.


❚참고서적
향토사수탄(김정진 편저, 1995년)
조상들의 품에서 살아온 사람들(문화관광부 한국향토사연구전국협의회, 2000년)

❚도움말
세종수맥학회 유준혁 선생
안산 교통안전공단 오종배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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