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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2500명의 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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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2500명의 들러리
  • 송희정
  • 승인 2007.06.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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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한 독자가 제안하길, 신문 1면에 구로지역 고3학생들의 명문대 진학률에 대한 기사를 내면 지역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다고 했다. 한마디로 ‘뜨는 기사’가 된다는 것이다.

지역의 열악한 교육여건 탓에 매년 적잖은 수의 학부모가 인근 양천구로 혹은 강남으로 이주하는 현실에서 ‘명문대 진학률’은 지역교육여건의 실태를 엿보고 각계의 관심과 해결을 촉구할 수 있는 주요한 소재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그 ‘뜰 수 있는 소재’는 지금껏 단 한 번도 기사로 실현된 적이 없다.

여전히 그리고 아직도, 기자의 눈에 아프게 밟히는 지역교육 안팎의 풍경들은, 교실의 삐거덕대는 오래된 책걸상과 뙤약볕 아래 먼지가 폴폴 이는 운동장, 늦은 밤 학원가로 발길을 옮기는 피곤에 절은 아이들, 학원비 마련을 위해 대형마트에서 바코드를 찍는 주부의 창백한 얼굴, 수업을 마친 후 오갈 데 없이 방 안에서 혼자 TV를 보는 아이들로 대변된다.

그래서 적어도 구로지역에서는 이러한 스산한 풍경을 자아낸 구조적인 문제들을 진단하고, 그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게 사회의 ‘공기(公器)’인 언론의 당면 과제이자 궁극적 목표라고 생각한다.

최근 구로구청의 논-구술 영재반 운영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구는 올해 세워진 교육경비보조금 중 1억원 가까운 예산을 투입해 구로관내 6개 인문계고교에서 수능모의고사 성적순 등으로 우수학생 60명을 선발, 지난 2일부터 매월 2회 4시간씩 상위권 대학진학을 목표로 한 ‘논-구술 영재반’을 운영하고 있다.

매년 교육경비보조금 예산을 증액 편성해 관내 초․중․고교의 환경개선 및 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해 애써온 구의 의지와 실천노력은 높이 살만하다.

하지만 그 구체적인 방안 중 하나가 관내 소수 성적우수학생들을 위한 논-구술 영재반 운영이라는 점은 심히 우려스럽다.

구로지역 인문계고교의 상위2.3%인 60명의 학생들에게만 양질의 교육혜택을 주겠다는 구의 정책 기조가, 극소수 엘리트들이 전체 국민들을 먹여 살린다는 소위 ‘엘리트 교육론’의 해괴한 논리에 맞닿아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집값 형성에 명문대 진학률이 지대한 영향을 미칠 만큼 교육열이 뜨거운 것이 한국사회의 현실이지만, 이는 엄연히 바로잡아야할 사회모순이지, 지방자치단체가 앞장서서 부채질할 일은 결코 아니다.

구는 재정운영의 공정성 확보의 기본 원칙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구가 1억원 가까운 예산을 투입해 실현할 이번 정책의 내용은 구로관내 고3학생 2500여명을 ‘둔재’로 낙인찍어 소위 ‘영재’들의 들러리로 만듦으로서, 공부 잘하는 소수에게 특혜를 주는 편향된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운영은 일반이익의 실현을 목표로 타당하게 운영돼야 한다. 그것이 없는 살림에 꼬박꼬박 세금을 납부하는 다수 주민들이 구로구청에 기대하고 바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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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11일(월)자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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