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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이야기 55]효자 이정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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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이야기 55]효자 이정간
  • 김윤영기자
  • 승인 2007.05.2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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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모위해 색동옷 입은 80대 아들
▲ 세종이 칭찬할 정도로 노모를 극진히 봉양한 전의이씨 이정간.

‘효자는 하늘이 낸다’고 하여 근천지효(根天之孝)라 불린다.

5월 8일 어버이날을 맞아 곳곳에 지극정성으로 부모를 섬긴 이들의 사연이 5월 한 달을 훈훈하게 덮어주고 있다. 구로구에도 효자로 후세대까지 기억될 만한 인물이 있다.

고려 공민왕 9년부터 조선시대 세종21년까지 살았던 효자, 전의이씨(全義李氏) 이정간이다. 원종공신 구직의 맏아들로 아버지의 음덕(蔭德, 조상의 덕)으로 사헌부집의를 거쳐 1405년(조선 제3대왕 태종5년)에 강화부사가 되었다. 그리고 조선 제4대왕 세종 때 강원도관찰사에 이르렀다.

이정간이 사헌부의 요직과 내외의 관직을 두루 역임하고 강원도관찰사로 재임하던 중, 그의 나이 70세때 100세의 노모를 봉양하기 위해 관직에서 물러나 향리에 은거하면서 노모를 봉양했다고 한다. 특히 자신도 80세의 노령이면서 100세의 어머니 앞에서는 색동옷을 입고 재롱(?)을 부리는 등 출천지효(出天之孝)로 이름을 날렸다.

세종이 이를 알고 그를 자헌대부 중추원사로 승진시킨 후 궤장(几杖, 임금이 나라에 공이 많은 70세 이상의 늙은 대신에게 하사하던 궤(几)와 지팡이)을 내렸다. 이때 세종이 효행을 표창하면서 친히 글씨를 써서 내려준 ‘가전충효세수인경(家傳忠孝 世守仁敬, 가정에서는 충효를 전하고, 인경을 대대로 지켜 나간다)’은 전의이씨 집안의 가훈으로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궁동 궁골의 동쪽 청룡산 아래 살고 있는 전의이씨 집안은 고려의 개국공신 이도를 시조로 11세손인 이정간, 이문간 형제가 이 일대 땅을 사패지로 하사받으면서 정착, 오늘날까지 대를 이어 살고 있다고 한다.

또 다른 인물은 천왕동에 살던 광주노씨 노숭이다. 고려말 조선초 문신으로 노모에 대한 효성이 뛰어나 예순 살이 넘은 나이에도 아침저녁으로 노모의 진지상을 직접 들고 갔으며 노모가 94세로 세상을 떠나자 매우 애통해하며 울부짖다가 쓰러지기까지 했다고 전해진다.

두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서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카네이션만 한 송이 달아드리고 말지는 않았는지 되새겨 보는 시간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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