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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이야기] 말하지 못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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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이야기] 말하지 못한 이유
  • 성태숙 시민기자
  • 승인 2019.02.25 11: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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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 부모님께 연락을 받았다. 상세히 말하자면 어머님이 부탁 말씀이 있어 전화를 하셨다. 중국에서 일을 하러 오신 두 분은 한국말이 많이 서툰 편인데, 그나마 어머님은 그래도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되는 편이라 나서서 전화를 주신 것이다.

두 분에게는 금지옥엽 같은 아들 문제 때문이다. 아들아이가 주말만 되면 아침 밥숟가락 놓자마자 전화를 받고 나가서 하루 종일 함흥차사라는 것이다. 꾸지람도 해보고 좋게 타일러도 봤지만 영 말을 듣지 않아서 센터에라도 부탁을 해볼까 하고 전화를 하셨다고 한다.

무엇을 하느라 그렇게 나가 있는 건지 물어보셨느냐고 하니 축구도 하고 아이들끼리 어울려 핸드폰으로 게임도 하고 그러는 모양인데 너무 빠져있는 것 같아서 걱정스럽다는 내용의 말씀을 하신다.

센터를 다니는 아이들이 주말에도 또 어울리며 어른들께 걱정을 끼쳐 드렸다는 말씀을 들으니 그냥 있을 수 없어 아이를 불렀다. 부모님이 염려하시는 바를 전하면서 일이 어찌된 것인지를 물으니 딱 잘라 그런 일 없단다.

물론 아침에 전화를 받고 나간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도 아침밥을 먹고 11시나 되어 나간 것이고, 어른들이 허락을 하지 않으시면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또 보통 대여섯 시면 들어오니 너무 늦은 시각까지 밖에서 돌아다닌 일도 없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꺼낸 사람이 머쓱해지는 순간이다.

어머님은 전화를 두어 차례나 해오셨고, 아버지는 특별히 다른 일로 센터를 오셨다가 마침 중국에서 오신 다른 분이 통역을 해주시는 바람에 겨우겨우 사정 말씀을 하시며 걱정과 속상함을 한껏 내비치고 가셨는데 이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아버지까지 그렇게 말씀을 하시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었더니 "아버지가 잘못 아셨겠죠?" 제 편한 대로 척척 정답이 나온다.

"그러면 혹시라도 최근에 그래도 늦게 들어간 일은 없었는지 다시 한 번 잘 생각해볼래?" 단호한 아이의 태도를 살살 달래볼 수밖에 없다. 그랬더니 뭐가 하나 나온다.

언젠가 6학년 형 둘하고 4학년 동생하고 어울려서 무료 와이파이가 설치되어 있는 청소년수련관에서 게임을 한 적이 있었단다. 실컷 놀다가 시장기가 동해서 한데 어울려 근처 편의점에 뭘 좀 먹으러 갔는데 공교롭게 형 하나가 수련관에 핸드폰을 두고 나온 일이 있었단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수련관을 갔는데 아뿔싸! 그만 문이 잠겨버렸다고 한다.

핸드폰이 제 목숨줄보다 귀한 데다 그걸 잃어버렸다고 하는 순간 부모님께 들을 꾸중이 걱정이 된 아이들은 문을 열어보려고 별 수를 다 쓴 것 같다. 급기야는 경찰을 불러 핸드폰을 꺼내 달라고 할 지경에 이르렀는데, 경찰이 출동을 해서 점잖게 내일 아침에 일찍 찾으러 오는 게 좋겠다고 해서 저희들도 그냥 그러는 게 좋겠다고 하고 헤어진 일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사건이 벌어져 경찰을 부르고 하는데 자기 핸드폰을 빌려주느라 집에 좀 늦게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듣고 보니 참 할 말이 없다. 그렇게 기특한 일을 하느라 집에 늦게 들어간 것이라면 꾸지람을 하기에는 좀 뭣하다. "그럼 아버지에게 그런 사정을 말씀드렸니?" 라고 물으니 안 그랬단다. 아버지가 들으시면 충분히 이해를 할 법한 일인데 왜 그랬는지 이유를 물으니 통역을 해주시는 어머니가 곁에 계시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중국말을 하는 아버지에게 사정을 설명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복잡한 듯했다. 수련관이니 편의점이니 그런 단어들을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도 몰라 아이는 그냥 꾸지람을 듣는 길을 택했던 것이다. 나중에 어머니를 끼고 또 이야기를 꺼내기에는 너무 귀찮아서 그냥 넘겼단다.

다문화라는 게 이런 거로구나! 퍼뜩 깨달음이 오는 순간이다. 그런 말조차 전하지 못하고 고스란히 꾸중을 듣고 마는 게 경계에 선 아이들이 겪고 있는 일이다. 가슴 아픈 혼란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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