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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이야기 191] 용기의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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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이야기 191] 용기의 칼
  • 구로타임즈
  • 승인 2019.01.21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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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벌써 보름이나 지났다.


이런 시간의 매듭이라도 없었다면 삶은 얼마나 지루하고 곤혹스러운 것이 될까.  지난 시간을 과거로 돌리고, 앞으로 맞을 시간에 희망이라는 이름을 붙이며 새로운 가능성을 품어볼 계기라도 없다면 삶은 마치 긴 악몽과도 같이 변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이런 시간이란 장치가 정말 그렇게 유용할까? 지난 시간의 일들은 이제 그만 훌훌 털어버리고, 앞으로의 일들은 새로운 마음에서 생각해보자. 이런 결심들은 특별한 노력이 없다면 일과 주, 월과 년 같은 시간의 특별한 매듭 언저리에서 잠시 맴돌기가 금방 사라져 버린다.  

두 아이의 싸움은 늘 잠시 전 과거가 문제다. 아무도 그 과거의 일을 제대로 알 수도 없다. 두 아이 모두 자신의 관점에서만 사건을 묘사하고 감정을 쏟아낸다. 마치 주문처럼 아이들은 똑같은 말로 상황을 설명한다. "나는 아무 잘못도 안 했는데...."가 주문의 첫머리다. 아무 잘못도 안했는데, 상대가 이렇게 저렇게 해서 억울하기 짝이 없다가 이야기의 요지다. 
상대는 대개 펄쩍 뛴다. 아무 잘못을 안 했다니...네가 이렇게 저렇게 잘못을 히지 않았는가? 되받아칠 말이 차고 넘친다. 

하지만 그런 응수는 전혀 소용이 없다. 그런 이야기를 곱게 받아들일 마음이 듣는 이에게 전혀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교사가 불러 오긴 했지만 교사 앞에서도 아이들은 계속 싸우고 있는 것이고, 오히려 그 교사를 자기편으로 삼아 더 유리한 싸움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시시콜콜 이야기를 짚어 들어가다 갑자기 경악스러워질 때가 있다. 잠시 전 티격태격한 일들을 가지고 시시비비를 가리고 있는 중인데, 갑자기 한 아이가 한참 해묵은 이야기를 불쑥 꺼내며 지금 벌어진 일들이 그 때 그 일 때문이란 식으로 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

본인은 그간 자신이 당한 사정의 억울함을 이 기회를 빌려 해결해보려는 속셈일 것 같으나, 대개는 '지금껏 그 일을 잊지 못하고 이제 와서...'라든가 혹은' 지금 이게 그 일과 무슨 상관이야?' 라는 당혹감에 실제로 그런 이야기들이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누군가의 과거에 뜻하지 않게 얽혀 들어가는 일은 곤혹스럽다. 당시 상황이 어떠했는지 잘 알 수도 없을뿐더러, 당사자들의 묵은 감정에 온전하게 공감하고 화해를 위한 해법을 내놓기도 쉽지 않다. 

자칫 잘못 얽혀 들어갔다가는 공연히 한 쪽 편을 든다는 지청구를 들으며 사건의 또 한 당사자가가 되어 버리는 일도 부지기수다. 그러니 아이들 다툼은 너무 크게 일이 번지지 않도록 두 아이를 데려와 하고 싶은 말을 실컷 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해주고, 또 적절한 순간 서로의 입장을 잘 이해하고 나의 숨은 동기를 드러낼 수 있도록 조력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어지간한 싸움들은 끝을 본다. 즉, 잘 싸울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방법이다.

하지만 어른들의 싸움은 이와 전혀 양상이 다르다. 자기 자신이나 자기가 속한 집단의 생존과 관련한 실질적인 이해관계와 관련하여 다툼이 일기 때문에, 아이들처럼 물러설 수 있는 가능성의 폭 자체가 실제 거의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다보니 싸움이 치열해지고, 자기의 이해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공연한 일에는 끼지 않는 것이 상책일 수 있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란 말은 이런 상황에 대한 현실적 처세술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눈치를 살피며 이해를 신중히 따지는 그런 처세술이 왠지 마뜩치 않다. 그런 태도에는 사태를 신중히 가려 옳고 그름을 따지고 적극적 역할을 모색하려는 마음가짐이 아예 없다. 그저 일이 어떻게 끝나든 싸움의 승자에게만 밉보이지만 않도록 하려는 얄팍한 처세의 한 단면이 숨어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정말 새로운 시간을 맞이하려면 용기의 칼을 들어 묵은 시간의 매듭을 스스로 끊어내는데 힘을 보태야 한다. 스스로 굿판을 마련하지 않는 한, 그저 떡이 아닌 떡고물에 입맛이나 다시고 말 가능성이 크다. 크게 한 입 베어 물으려면 큰 용기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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