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3-28 10:19 (목)
[구로동이야기] 8350원의 해
상태바
[구로동이야기] 8350원의 해
  • 성태숙 시민기자
  • 승인 2018.12.28 10: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청와대앞에 간 지역아동센터

온 나라가 떠들썩하게 새해를 맞이하고 있다. 그 떠들썩함의 중심에는 역시 먹고사는 문제가 핵심으로 버티고 있다. 무엇보다 내년에는 10% 이상 오른 최저임금 8,350원을 두고 걱정과 기대가 실망 등등이 어우러져 묘한 긴장감을 만들고 있다.


지역아동센터도 급기야 광화문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돌입했다. 모두들 처음 하는 일이고, 한겨울 광장의 한복판에 농성을 시작하다보니 서툴고 또 그래서 더 힘든 게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이것 역시 최저임금과 관련이 있다. 임금은 10%가 넘게 올랐으되, 지역아동센터 운영을 위해 지원하는 보조금은 2.5% 상승으로 1/4에도 못 미치게 올라고 말아, 내년 살림살이에 적신호가 켜졌기에 벌인 일이다. 


천막농성이 정말 무슨 효과가 있을까 의구심도 들지만 이 조차도 안 하고 그냥 넘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는 주로 사람들이 나오기 곤란한 공휴일에 천막을 지키는 당번이다. 이제는 거리에 캐롤도 울리지 않는 지난 크리스마스도 역시 나는 천막을 지키는 당번이었다. 천막을 지킨다고 말은 하지만 그렇다고 천막 안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은 아니다. 


지역아동센터의 어려움을 알리는 글들을 커다란 판에 만들어 그걸 들고 거리에 서서 오가는 사람들에게 우리 입장을 하소연 하는 1인 시위를 하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난 크리스마스에는 아주 보란 듯이 세종문화회관의 현관 계단 앞에 죽치고 서있었다. 커다랗고 빨간 곰돌이 인형이 계단 중간에는 멋지게 자리를 잡고 있어, 어느 틈엔가 관광객들이나 오가는 사람들이 멈춰서 사진을 찍고 가는 장소가 되어버린 계단이다. 


크리스마스니 이런 곳에 서 있으면 혹시 산타 할아버지가 오가며 보시다가 선물처럼 우리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실상 나란 존재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사진을 찍는데 매우 방해가 되는 존재였을 따름이다. 이런저런 눈치에 조금씩 밀려나다가 결국은 안되겠다 싶어 이번에는 청와대 앞으로 자리를 옮겨보기로 했다. 


또 보기보다 얌전히 살아서 청와대 앞의 1인 시위도 또 실은 처음이다. 청와대가 어디 있는지도 몰라서 우선 손전화로 위치를 검색해보니 생각보다 그리 멀지 않은 듯싶어 그나마 다행스러웠다. 경복궁 돌담길을 끼고 쭉 따라 들어가는 길 끝에 서 있는 모양이다. 그나마 시위를 하러 가는 길이 아름다울 것이라 생각되니 작은 위로가 되는 듯싶었다. 


한참을 걸어가는데 중간의 초소에서 점잖게 생긴 분이 말을 걸어온다. 시위를 하러 오셨냐며, 초행이냐고 묻는다. 보통 좀 아는 분들은 앞전에서 길을 건너서 가는데 아마 초행인 듯싶다며 여기서 길을 건너 쭉 올라가서 시위와 관련해 안내를 받으라는 것이다. 갑자기 사람을 불러세워 깜짝 놀랐는데, 그래도 이리 친절하게 이야기를 해주니 참 새로운 기분이다. 세상이 좋아진 걸까? 그렇다고 봐야 할 것 같은 조짐들도 적지는 않은 것 같다. 


청와대 앞이 이렇게 생겼구나 속으로 감탄을 하며 목적지에 다다랐다. 일러준 대로 그럴싸한 사람을 붙들고 1인 시위를 하러 처음 왔다고 하니, 선생님이 처음이시지 단체에서는 이미 여러 분이 다녀가셨다며 아는 척을 한다. 주로 많이 하는 장소도 일러주고, 또 사랑채란 건물에서 잠시 쉬거나 화장실을 이용할 수도 있다고 친절하게 일러주신다. 오호! 정말 새롭다.


이미 긴 시간 동안 자리를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천막들도 보인다. 일러주는 이의 말에 따르면 그런 분들과 외부에서 오는 분들이 평소에는 십여 분씩 시위를 하는데, 오늘은 날이 날인만큼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나는 아무 것도 모르는 초짜'인 셈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청와대를 향해 입장문을 높이 세워 들었다. 두 장을 가져왔기에 한 장은 다리 앞에 들고 또 한 장을 벌을 서듯 높이 들고 섰다. 


그리고 바라본 청와대는 텅빈 듯 눈물 속에 가려진다. 누군가 이 외침을 봐줄까? 아마 산타조차 청와대 앞을 올 일은 없겠지.


8,350원의 해는 그렇게 새로운 경험을 잔뜩 선사하며 오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