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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이야기] 더위가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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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이야기] 더위가 무섭다
  • 성태숙 시민기자
  • 승인 2018.07.27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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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다. 새벽 3시에 일어나 현관문을 활짝 연다. 도무지 바람이 통하지 않는 집안에서 잠들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설핏 잠이 들었다가도 기어코 중간에 깨고 만다. 이렇게 겁도 없이 현관문을 활짝 열어 놓은 채 잠을 자는 줄 알면 어머니께서는 난리를 치실 게 뻔하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른다고 말이다. 하지만 난 더위가 더 무섭다. 


날이 맹렬하게 더울수록 행동거지는 느려지고 앞서 말한 것처럼 느슨해진다. 머릿속으로는 후딱후딱 하고 싶지만 걸음걸이조차 살살 걷게 된다. 땡볕 아래서 한참을 걸어가다 보면 괜히 심장이 두근거리는 느낌이 들어 걸음이 절로 더뎌진다. 


우리보다 더 더운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그늘에서 자주 휴식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더운 나라에서는 조금 활동하고 한참 휴식을 취해주지 않으면 어쩌면 신체가 제대로 기능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마주친 이웃집 아주머니께서는 하루 종일 에어컨을 켜지 않을 수 없다고 하소연을 하신다. 연세가 높으시고 몸이 불편하신 분이다. 더 이상 일을 하고 계시지 않으니 나처럼 일터의 에어컨 신세를 질 수도 없다. 지난여름에는 그래도 식구들이 모였을 때나 잠시 동안 켜고 말던 에어컨을 이제는 식구들이 있으나 없으나 계속 켜고 살 수밖에 없다고 한탄을 하신다. 당신께서 홀로 계실 때에도 이 더위는 그냥 넘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아주머니께서는 더위도 무섭고 전기세도 더 무서운 모양이다. 하지만 당장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서로의 체온이 더 무섭다.


우리 집에는 에어컨이 딱 한 대가 있기는 하다. 근 10년이 훌쩍 넘은 낡은 에어컨이다. 부끄럽게도 이제는 보낼 때가 되었다 치고 청소나 관리도 제대로 못해준 우리집 퇴물들 중 하나다. 최근에는 해소천식이라도 하시는지 에어컨을 켜면 실외기가 완전 끙끙 앓는 소리를 너무 심하게 낸다. 남부끄러워서 어디 에어컨을 켜고 살 수 있겠는가 싶을 정도로 소리가 나서 있어도 써먹기가 영 좀 그렇다. 


게다가 작은 집 안에 두 장성 같은 아들들이 함께이다. 이 때가 지나고 나면 우리 셋이 이렇게 모여 사는 일은 아마 지금이 마지막이겠다 싶지만, 아무튼 지금은 열정덩어리가 아닌 그냥 열 덩어리에 불과한 장성 두 명을 데리고 함께 살고 있다. 두 장성의 거처에는 달랑 선풍기 한 대씩이 배정되었을 뿐이다. 에어컨은 특별히 돈을 벌어오는 나를 위해 어머니께서 놓아주신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셋 중 가장 사랑받는 자식은 우리 어머니 자식인 나인 셈이다. 

그런 집안의 빈부 격차이자 애정 격차로 인해 홀로 소유하고 있는 에어컨을 켜는 일은 그래저래 삼가는 일이 되고 말았다. 에어컨이 죽는 소리를 내건 말건 잠시라도 켜서 속이 시원해지는 서늘함을 조금이라도 맛보고 싶지만 그래도 어미 된 처지라 선풍기로 버티고 있는 자식들이 괜히 신경 쓰인다.

밤새 틀고 함께 자자고 해도 내가 무슨 못할 소리라도 한 것 마냥 기겁을 하고 손사래를 친다. 어머니가 다녀가신 날 퇴근하는 딸내미를 위해 켜놓고 가시는 일조차 없다면 그 시원함을 맛조차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도 언제까지 이리 체면치레를 하며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느 날 '엣다 모르겠다' 하고 에어컨을 그냥 켜버리고 말지도 모르겠다. 너무 더위가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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