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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이야기] 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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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이야기] 폐문
  • 구로타임즈
  • 승인 2018.07.13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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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잠시 읽었던 글이 있는데 그 작가가 박 경리 선생이었던 것도 같고, 아니면 다른 어떤 작가였던 것도 같다. 제법 긴 글이었는데 오로지 한 대목, 말 한 마디만이 가슴 깊이 남았다. 


때는 아마 6.25 전후의 어느 시점이었던 것 같다. 전쟁의 북새통에서 그야말로 사람이 무서워진 작가는 소도시에 있는 자신의 고향집으로 돌아가 홀로 '폐문'을 했었다고 한다. 물론 이 기억이 완전히 잘못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어쨌거나 '이리와 승냥이 떼거리'가 우글거리는 세상 바깥에 대고 작가가 실제로 그랬는지 아니면 상징적인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빗장을 걸어 잠갔다는 것이다. 그리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이었던가를 따지는 일도 그만두자. 다만 허름한 대문에 빗장 하나를 걸어 스스로를 가두기도 하는 그 '폐문'이란 말을 나는 그 후로 오랫동안 잊지 못했다. 


모든 일에 그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이라면 그런 말에 홀린 내 맘에도 따져볼만한 이유가 없지 않을 것이다. 


지금 세상이 이리와 승냥이가 우글거리는 북새통은 아닐 터이니 아마도 나는 어딘가에 스스로를 가두는 일에 더 마음이 끌렸을지도 모르겠다. 


정말 때로 그러고 싶기도 하다. 일신은 안전하고 먹고 사는 것은 그래도 최소한의 수준은 넘어선 듯 하지만 날이 갈수록 갈증을 느끼는 것은 넉넉하지 못한 시간 문제이다. 듣자하니 이렇게 일이나 육아에 쫓겨 자신을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는 사람들을 '타임 푸어(time poor)족'이라고 부른다고도 한다. 


그래도 아이들을 다 키워놓은 입장이니 아마 나는 분명 한시름을 놓았을 것인데 그래도 종종거리긴 하루 종일 마찬가지다. 넉넉한 시간을 전혀 느끼지 못할 만큼 늘 일이 빈틈없이 몰려오고 있다. 


여기에 아이들이나 집안의 아픈 어르신을 돌보느라 마음을 함께 써야했다면 정말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런 돌봄에 힘을 보태온 곳들이 실은 여기저기 적지 않았다는 것을 차츰 알게 되었다. 


전에는 지역아동센터 안에서 아이들을 돌보느라 정신이 없기도 했거니와 지역에 별다르게 모일 수 있는 자리도 없어서 작은 도서관에서 하는 돌봄 등은 전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흥부네 작은도서관', '마중물 작은도서관', '함께 크는 아이들', '배고픈 사자' 등등의 작은 지역 기관들이 '구로파랑새나눔터지역아동센터', '누리지역아동센터', '평화만들기지역아동센터' 등등과 같은 지역아동센터와 함께 아이들을 함께 돌보는 기관으로 나름의 역할을 해왔던 것이다. 


대부분 뜻을 함께 하는 동네 사람들 몇몇의 힘으로 운영을 감당해 나가는데 필요한 갖가지 어려움을 겨우겨우 이겨내 온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렇다고 지역아동센터는 이제 살 만하니 이런 소리를 한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과부가 홀아비 사정을 안다고 그런 비슷한 시절을 겪어왔고 또 지금도 겪고 있기에 그 어려움에 남다른 마음이 갔다고 하는게 더 솔직한 표현일 것이다. 


지난 선거 시기 이런 곳들에 대한 관심을 쏟아야 한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려왔으니 작은 도서관에도 햇빛이 드는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를 걸어봄직하다. 이 바쁜 틈에서 잠깐 행복한 생각 속에 마음의 빗장을 걸어본다. 난 오늘 폐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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