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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이야기 185] 수목원을 사랑하게 되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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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이야기 185] 수목원을 사랑하게 되었네
  • 성태숙 시민기자
  • 승인 2018.06.29 11: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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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또 봄이 무르익고 여름에 접어드는 길목에 나는 푸른 수목원 가까운 곳에서 자주 시간을 보냈다. 성공회 뒷산 너머 수목원 안으로 접어드는 입구까지 갔다가 몇 번이나 발길을 그대로 돌린 것은 그냥 별 것이 있을까 하는 낮은 기대감 때문이었다. 우리 지역에 뭐 그리 눈여겨 볼만한 곳이 있겠는가 하고 섣부른 판단에 막 초입에서 그냥 발걸음을 돌리곤 했던 것이다. 


그러다 우연히 동행한 사람이 저기까지 가보자 하고 권하는 바람에 수목원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수목원을 사랑하게 되었다. 넓지 않아서 좋고, 막 꾸며진 신선한 기운에 온 몸이 다 상큼해지는 기분이었다. 수목원 한 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너른 저수지는 간만에 속이 탁 트이는 기분을 맛보게 해주었다. 


그리고 나는 수목원을 너무 사랑하게 되었다. 언덕길을 올라 뒤쪽 쪽문 사이로 접어들어 왼쪽으로 크게 한 바퀴 도는 것이 가장 좋아하는 산책길이 되었다. 처음에는 작은 잎사귀들이 막 얼굴을 내밀고 나무들도 막 연초록 어린잎들을 낳고 봄기운에 몸을 풀고 있을 때였다. 그 모습에 홀딱 마음을 빼앗긴 나는 얼마 후에는 그 정경을 보여주고 싶어 안달을 하다 우루루 파랑새 아이들과 학부모님들을 모시고 수목원을 향했다. 작은 아이들을 우루루 몰고 수목원을 향하면서 두근거리는 기쁨에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 얼마나 환성을 지를까? 모두들 틀림없이 너무 좋아할거야 심장이 먼저 뜀박질을 한다. 


그런데 수목원 초입에 들어서니 갑자기 낯선 모습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며칠 전만 하더라도 갓 시집와 아이들을 낳고 수줍은 새색시 같은 자태를 자랑하던 나무들이 한창인 봄기운에 어우러져 어느새 우렁우렁한 모습으로 짙푸른 잎들을 제법 달고 서 있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그 짙푸름이 잠시 낯설어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역시 모두들 연이어 감탄이다. "와 구로동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전혀 몰랐는데, 너무 좋네요. 좋은 곳을 소개해주셔서 고마워요. 태샘" 함께 온 보람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어른들은 이곳저곳 좋은 경치를 구경하느라 어른들은 정신이 없지만 아이들은 금방 저희들끼리 어울려서 삼삼오오 놀이를 시작했다. 오랜만에 구로동 안에서도 자연을 즐기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 수목원 인근도 아마 구로의 굵직한 논란거리들 중 하나라고 들었다. 쓰레기 처리장을 두고 설왕설래가 있는 줄 안다. 불안하고 염려스럽다는 이야기들이 적지 않은데, 그것은 기우일 뿐이라고 구청에서는 일축을 한 모양이다. 아름다운 수목원 정경을 둘러보고 있노라면 그런 이야기들이 더 씁쓸하게만 다가온다. 좀 더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길을 찾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길이었을까? 


아예 정책 실명제 같은 것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수목원을 기획하고 애를 쓴 일꾼은 누군지, 또 이렇게 갈등의 소용돌이를 잠재우지 못하고 있는 이는 누군지 아예 수박에 생산자 이름을 붙이듯 그렇게 정책 실명제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어린 잎 하나가 금새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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