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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이야기 177]공방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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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이야기 177]공방 가는 길
  • 성태숙 시민기자
  • 승인 2017.07.04 15: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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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은 하릴없다. 잠깐 짧은 낮잠을 자지 않으면 간혹 밀린 일거리들을 처리하며 이리저리 빈둥거리다 보면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빠져나가듯 그렇게 일요일은 속절없이 가버린다. 


그랬던 일요일이 요즘 새롭게 다가오는 것은 얼마 전부터 다니기 시작한 개봉동의 한 공방 때문이다. '아 우리 동네에도 가죽공방이 있었구나' 하고 오랫동안 눈여겨 봐왔던 곳을 드디어 다니게 된 것이다.

다들 남의 살가죽일 터 절대 그런 것에 욕심을 내면 안된다고 스스로를 타일러보지만 가죽만 보면 눈이 휘둥그레지고마니 참 못 말릴 일이다. 


그렇다고 값비싼 물건이 갖고 싶은 것은 절대 아니다. 남들이 값비싸게 만들어놓은 물건을 볼 줄 아는 눈도 없거니와, 취향도 촌스러운 편이라 다행히 탐나는 물건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오로지 하고 싶은 것은 그것을 만들어보는 일이다. 


아마도 그건 어릴 적 별로 재미없게 보았던 '피노키오' 만화영화에서부터였을지 모르겠다. 말도 지지리 안 듣고 제멋대로인데다 여기저기 쏘다니는 걸 좋아하는 피노키오는 미안하게도 별로였지만, 그보다 피노키오를 만든 제페토 할아버지의 모든 것은 모두 딱 내 취향이었다.

무엇보다 톱밥과 얼룩이 잔뜩 묻은 커다란 앞치마와 이런저런 작은 공구들이 잔뜩 걸려있는 작은 작업실을 보자마자 내 마음을 빼앗아버렸다. 그런 작업실의 작은 의자에 앉아서 이런저런 재료를 손질해서 그럴 듯한 물건을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제때 알아차리진 못했지만 내가 늘 품어왔던 소망들 중 하나였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이런저런 것들을 많이 배워오기도 했지만 한참 아이들을 낳고 기를 때까지 아무 생각 않고 재미있을 것 같아서 무언가를 단순히 배우거나 해본 기억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이걸 배우면 이렇게 써먹을 수 있겠지, 아니면 이러저러한 일이 도움이 되겠지 하는 생각에 조금 배워보다 또 생각대로 여의치 않으면 금방 포기하고 잊어버렸던 일들이 부지기수다. 


그런 거로 치면 지금처럼 나이가 어느 정도씩 들어가는 것도 영 나쁜 일은 아닌 것 같다. 이제는 예전처럼 그렇게 앞으로 이렇게 저렇게 써먹어야겠다는 야무진 궁리는 덜하게 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제 와 그런 걸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쉽사리 일을 시작하지 못하는 것이 더 문제가 될 뿐이다. 


그러니 개봉동의 작은 공방 문을 열고 들어설 때 나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앞으로 그 어떤 일에도 써먹을 궁리하지 않고 오로지 지금 이것을 해본다고 하는 사실에만 집중해서 무언가를 시작해본다는 것만으로도 홀가분한 기쁨이 밀려들었다. 


하지만 이 일은 이렇게 늦게 시작해서 될 일이 아니었다. 작은 공구들을 다루어야 하고 바늘 두 개를 붙들고 이쪽과 저쪽을 이어 붙여야 하는 일이다 보니 잘 보이지도 않는 짓무른 눈으로 바늘구멍을 뚫는 것도 어려웠을뿐더러 겨우 뚫어놓은 바늘 구멍을 더듬더듬 찾는 것도 힘겹기 그지없다. 


겨우겨우 뚫어놓은 구멍으로 정성껏 바느질을 해놓았건만 구멍 따라 바느질한 선이 삐뚤빼뚤 말할 수 없을 지경인 것을 보니 기가 차다. 아무도 그렇게 하라고 하지 않았건만 정성껏 바느질 구멍을 잘못내고 또 있는 대로 그 구멍을 따라 바느질을 해대는 모습이 마치 내가 살아온 한평생과 어쩜 이리 닮아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코앞에서 환한 불이 밝혀져도 이미 초점이 잘 맞지 않는 눈은 소용이 없다. 더욱이 내 딴에는 제일 마음에 드는 것으로 실컷 골라서 만들어 놓은 것을 슬쩍 보여주었더니 촌스럽다고 난리다.

아무리 용을 써도 나는 벌써 한참 뒤에 처진 사람인가 보다 살짝 당황스러운 기분이 들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러면 뭐 어떻겠는가? 모두들 앞서가라고 하자. 난 지금 이 바늘 구멍을 다시 내고 다시 바느질을 손보자면 한참이 더 걸릴 텐데...난 어차피 천천히 갈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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