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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희망읽기 ]5월 대선과 일장춘몽 (一場春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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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희망읽기 ]5월 대선과 일장춘몽 (一場春夢)
  • 장호순 순청향대 신문방송학 교수
  • 승인 2017.04.24 14: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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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선에서는 많은 유권자들이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제대로 찍겠다고 다짐한다. 그래서 그런지 각종 여론조사 결과는 예전 선거와는 상당히 다른 양상들을 보이고 있다. 후보자 선호도에서 보수와 진보 간의 경계가 흐트러졌고, 지역 간 차이보다는 세대 간 차이가 더 크게 나타나고 있다.

유력 후보자들도 대부분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새로운 정부를 만들겠다고 약속한다. 다짐으로만 본다면, 대한민국의 정치는 5월 9일 이전과 이후로 크게 달라질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새로운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는 일장춘몽으로 끝날 것 같다. 후보자들의 거창한 公約이 空約으로 끝날 가능성 때문만은 아니다. 새 정부가 과거 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는 이유는 어느 후보도 박근혜 정부의 몰락을 가져온 근본 원인을 직시하고 대안을 제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의 급작스런 불명예 퇴진은 정치를 잘못해서가 아니라, 언론장악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즉 언론장악에 성공했다면 청와대에서 구치소로 주소를 변경하는 신세들은 면했을 것이고, 5월 9일 대선도 없었을 것이다.

비록 실패하긴 했지만 박근혜 정부는 언론장악에 그야말로 심혈을 기울였다. 청와대의 비리내막을 먼저 알고 파헤치려는 세계일보를 입막음 했고, 타 신문사로 번지는 것을 진화하는 데에도 성공했다. 공영방송 KBS와 MBC 이사회와 경영진도 청와대 호위무사들로 배치해서, 박근혜 정부에 대한 비판보도를 원천 봉쇄했다.

영화계와 문학계 등 대중문화 분야는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정부지원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정권비판 여론을 무력화시켰다. 청와대는 그것도 모자라 홍보수석 비서관을 통해 방송의 뉴스보도나 프로그램 내용까지 직접적으로 개입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청와대의 언론장악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공영방송을 외면하고, JTBC와 같은 신생 소규모 언론사를 더 신뢰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청와대는 손석희 JTBC 사장을 제거하려고 JTBC 회장에게 노골적인 압력을 가하고 삼성에게 광고철회까지 요구했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결국 JTBC는 최순실 태블릿 pc라는 역사적 특종을 해냈고, 여론의 물길을 바꿔놓았다.

그제서야 권력의 눈치를 보며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던 사람들이 신문과 방송에 나와서 감히 비판하고 도전하기 시작했고, 결국은 촛불시위라는 거대한 국민적 저항운동으로 이어졌고, 정권퇴진으로 귀결되었다.

박근혜 정권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권력의 언론장악이나 권력/언론 간의 부당거래를 근원적으로 차단하는 제도적 개선책이 필요하다. 박근혜 정부가 언론장악을 쉽게 생각한 이유는 법적으로 대통령이 방송을 얼마든지 좌지우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방송관련법을 대략 요약하면, 대통령은 방송통신위원장을 임명하고, 방송통신위원장은 각 공영방송사의 이사장을 임명하고, 방송사 이사장은 사장을 임명하고, 방송사 사장은 지방방송사 경영진과 일선 기자와 피디를 지휘한다. 윗 사람의 눈치를 보며 그들의 입맛에 맞는 방송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한국 방송의 현실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이를 고치기 위해 지난 겨울 야당은 언론노조 등 소위 진보진영 언론인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언론장악방지법"을 제정하겠다고 밝혔다. 청와대가 KBS와 MBC, EBS 등 공영방송을 장악할 수 있게 만든 방송법, 방송통신위원회법, 방송문화진흥회법, 한국교육방송공사법 등을 고치겠다는 것이다.

당시 제시된 대안의 골자는 "국민참여형 공영방송 지배구조"이다. 시청자의 이사회 참여를 보장하고, 청와대와 여당의 이사회 추천 비율을 축소하는 것 등이다. 즉 현재 여권이 사실상 독식하는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여야가 나눠갖자는 것이다.

그러나 그 정도의 개선책으로는 권력의 언론장악 욕구를 차단하기 어림없다. 진정한 민주국가가 되려면 권력이 언론장악을 꿈도 꿀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 정치 선진국들은 각각 고유의 언론구조를 갖고 있지만 공통된 특징이 있다. 언론과 권력 간의 부당한 거래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그 주된 이유는 언론권력이 지역적으로 고루 분산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면 피라밋 구조로 이루어진 한국의 공영방송 지배구조는 아주 쉽게 청와대가 전국의 모든 방송을 장악할 수 있게 해준다. 중앙의 방송만 접수하면 저절로 전국이 장악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되든 방송을 장악하고 언론과 거래하려는 시도는 여전할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보다 철저하고 은밀하고 교묘하게 언론과 거래할 가능성도 높다. 한국에서 정치는 국민들의 생계와 복지를 위해 일하는 것 보다는, 그렇게 하는 것처럼 언론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쇼를 하고, 중앙언론이 그 쇼를 "정확하고 공정한 뉴스"처럼 포장해준다. 5월 대선이 끝나도 그러한 언론의 "정치쇼"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주연 정치배우와 조연들만 조금 바뀔 뿐이다.

그리고 다음 정권이 임기를 마칠 때 쯤 국민들은 또 다시 다짐할 것이다. 다음 선거에는 제대로 뽑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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