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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이야기 169]예산을 짠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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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이야기 169]예산을 짠다는 것
  • 성태숙 시민기자
  • 승인 2017.03.17 14: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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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을 맞아 제대로 된 주말을 통 맛보지 못했다. 주말마다 대림역 인근에 있는 '함께' 사무실로 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함께'는 지역에서 아동과 청소년들에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과 기관들이 모여서 서로 공동의 관심사를 가지고 함께 일을 하자고 모인 것이니 요즘에는 이런 모임을 '네트워크' 즉 '협력망'이란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러니 '함께'도 실은 '구로아동청소년네트워크 함께'란 긴 이름을 가지고 있다.
'함께'는 사실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지난 수년간 삼성꿈장학재단의 기금을 받아 사업을 운영해오고 있었다. 어른들이야 드문드문 아는 사람이 있을 테지만 아이들 사이에서는 알만큼 알려졌다고 하는 '구로구로 와 축제'가 바로 이 삼성의 기금을 받아 운영되는 행사이다.


3월마다 주말을 헌납한 것은 바로 이 삼성에서 지원하는 올해 지원사업의 사업계획과 예산을 수립하기 위해서이다. 2억 원이나 되는 막대한 돈을 연간 계획으로 수립해야 하니 그 기금의 규모도 그렇지만, 사업을 깐깐히 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 삼성인지라 연간 사업을 눈앞에 훤히 드러낼 정도로 꼼꼼히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러니 주말을 송두리째 바치지 않고서야 도리가 없다. 더욱이 그동안 장하게 일을 맡아 해오던 사람들이 이제는 그만하겠다고 모두 손발을 든 참이어서 일을 꾸려내는데 쉽지 않았다.


사업계획을 짜는 일은 예산을 짜내는 일에 불과하다. 예산을 짜는 일은 또 기준을 세우고 일의 질서를 바로잡는 일과 같다. 식비나 강사비, 학습재료비 등등은 얼마로 할 것인지 각각의 항목마다 기준액을 세우고 연간 몇 회나 필요할 것인지 가늠이 되어야 예산의 액수를 어름 잡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그런 기준은 또 멋대로 세울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삼성 자체에서 뭐에는 얼마 이상을 쓰지 못하도록 못을 박아둔 것도 고려해야 한다. 그러니 교육 한 가지를 마련하고자 한데도 생전 보지도 못한 강사에게 전화를 걸어 교육을 부탁하고 또 시간당 교육비가 얼마라는 것까지 협의가 되어야 예산안이 비로소 완성이 되어갈 수 있는 복잡한 단계를 거쳐야 한다.


강사들 중에는 주시면 주시는 대로 받겠다는 선선한 분도 계시지만 워낙 이 정도는 받아왔다고 하시는 분들은 고민을 하게 만든다. 게다가 시간이 많지 않은 지역 실무자들이나 부모님과 아이들은 교육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는 것만큼 선선히 교육에 참여하기는 쉽지 않아서 한 열 번쯤은 연달아 교육을 받아야 뭘 좀 변화가 있지 않겠는가 하고 이야기를 하는 강사를 만나게 되면 큰 고민을 하게 된다.


무엇이든 꾸준히 듣겠다고만 약속한다면야 열 번이 아니라 백 번이라도 강의를 마련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사람살이가 열 번을 꾸준히 하기가 얼마나 쉽지 않은지 익히 잘 알고 있는지라 열 번을 제안하는 강사 앞에서는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상황이 되면 이야기를 하다말고 죄송하다는 말을 연발하며 그만 청을 되물리게 되고 말 뿐이다.


뿐만 아니다. 예산을 짜놓으면 또 다른 고민들이 밀려온다. 이 일을 왜 우리가 예산 지원까지 해야 할 일인지도 고민을 하게 된다. 무언가 맞는 것인가 하는 고민이 들기도 하고, 여기는 왜 이리 많이 요구하는가 하는 것도 고민스러운 대목이다. 무엇이든 풍족한 경우는 없으니 넉넉히 좀 하자고 청을 넣는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누구처럼 'VIP'를 물지 않는 한 꼭 필요한 곳에서조차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한숨 나는 예산이나 받아야 하니 '내가 예산을 짤 기회가 있으면 그냥 확!' 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줄 사람의 입장이 너무 뻔히 보이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식으로 해도 과연 저쪽에 먹힐까 싶어 지레 손이 간다. 그런데 그런 예산을 그것도 국민의 예산을 말 한마디 고쳐서 떡 주무르듯 했다고 하니 참 한숨이 난다. 그리 해놓고도 웃으며 집으로 돌아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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