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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희망읽기 94]'색바랜 향우회'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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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희망읽기 94]'색바랜 향우회' 유감
  • 장호순교수(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승인 2017.01.06 16: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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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우회는 같은 고향 사람들이 친목과 상조를 위해 만든 모임이다. 낯설은 타지에 살면서 겪는 정서적 소외감이나 경제사회적 불리함을 극복하는데 도움을 주는 역할도 한다.


그런데 최근 국회 최순실 청문회 관련 인사들이 특정 지역의 향우회를 통해 서로 알고 지내는 사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향우회의 역기능이 다시 부각되었다. 향우회가 정치인들의 선거운동 조직이나 소수 특권층 부정부패의 연결 고리로 변질되는 현상이다.

향우회의 규모는 각양 각색이다. 가장 보편적인 형태는 시군 단위의 향우회이지만, <호남향우회>처럼 광역시도를 아우르는 거대 연합조직으로 몸집을 불린 단체도 있다. 한편 하나의 마을이나 읍면 출신 사람들이 만드는 작은 규모의 향우회도 있다.


규모에 관계없이 향우회의 공통점은 자신이 떠나온 고향에 대한 애정과 향수가 강하게 남아 있는 사람들이 모인다는 것이다. 향우회의 유일한 가입조건은 같은 고향이기에 자연 다양한 사회적 계층의 사람들이 모인다.


그러나 다른 사교적 모임과 마찬가지로 적극 활동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먹고 살만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다. 변호사나 의사와 같이 일부 전문직종 사람들끼리만 만드는 향우회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여유있는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고향을 위해 좋은 일도 한다. 고향 후배들을 위해 장학금을 모금하기도 하고, 고향의 특산물을 사주기도 하고, 고향에서 발행하는 지역신문을 구독하기도 한다.

향우회는 1960년대 산업화가 도래하면서 생겨난 독특한 사회조직이다. 수도권 개발과 도시화로 인해 이촌향도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고향을 떠나 도시에 모여든 사람들이 크게 늘어났고, 그들이 정서적으로 의지하는 모임으로 생긴 것이 향우회이다.


과거 농어촌에서 혈연과 지연을 기반으로 안정적 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새로이 정착한 대도시는 부유함과 편리함을 주었지만, 고향에서 느끼는 정서적, 심리적 만족감을 제공하지는 못했다. 같은 업종이나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같은 취미나 운동을 하는 사람들과 친구가 되기도 하지만, 낯선 사람들과 치열하게 생존경쟁을 해야 하는 도시생활은 늘 외로움과 불안함을 수반했다.


이들에게 향우회는 고향사람들로부터 느끼는 고유의 편안함과 친밀함을 제공해 주었다. 비록 고향에서처럼 마을부락 단위의 상부상조나 친밀한 교류는 어려웠지만, 일년에 한 두차례 만이라도 모여서 서로의 유대와 정서적 동질성을 확인하곤 했다.


향우회가 회원들에게는 소속감과 유대감을 강화시키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정치사회적으로는 부정적인 측면도 적지 않다. 향우회 회원들은 대체로 출신지역에 대한 애착이 강하고, 더불어 타 지역에 대한 배타성과 차별성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지역의 영호남 향우회 회원들을 조사한 2011년 논문에 따르면, 그들은 대체로 그들만의 폐쇄적 소공동체를 형성하고, 실제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해선 무관심한 경향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향우회의 가장 큰 문제는 정치적 역기능이다. 2004년 발행된 한 논문에 따르면 향우회 회원들은 대부분 동일한 정당이나 동일한 후보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호남 지역 향우회 회원들은 호남 출신 후보를, 영남지역 향우회 회원들은 영남 출신 후보를 지지하는 비율이 매우 높았다. 특히 향우회 임원들은 일반 회원들보다 그 정도가 더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결과 선거 때가 되면 많은 향우회가 정치조직 혹은 선거조직으로 변질되곤 한다.


향우회는 이촌향도로 상징되는 경제개발 시대의 산물로, 전근대적 농어촌 정서가 근대화된 도시에서 발현되는 독특한 사회조직이다.


따라서 이주의 시대에서 정착의 시대로 회귀한 한국사회에서 향우회는 지속가능이 어려운 구시대적 유물이다.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인 연고주의나 지역감정의 매개체로 변질된 향우회가 아니라, 고향사랑 정서에서 비롯된 본래의 순기능이 향우회의 마지막 그날까지 발휘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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