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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이야기 154]삶의 경로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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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이야기 154]삶의 경로에 대하여
  • 성태숙 시민기자
  • 승인 2016.11.11 14: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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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을 다쳤다. 실은 벌써 한 달이 다되어 가는 일이다. 한쪽 팔꿈치 뼈가 부러져서 급기야 깁스를 해야 할 지경이 되었다. 양 손을 다 써서 부리나케 일을 해도 허덕거릴 판에 한 손을 묶어놓은 상황이 되고 보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어쩌다 그렇게 다쳤냐고 적지 않게 인사를 받았다. 안부를 물어주는 인정들이 감사하기도 하고, 다친 사연이 하도 시답잖아 우스갯소리로 십칠 대 일로 싸우다가 그리 되었다고 괜한 우스개 소리로 넘겼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아주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가냘픈 팔 한쪽을 거대한 내 몸뚱이로 덮친 것이니 받은 충격의 결과로 보면 별 다를 바가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실은 길에서 어이없이 넘어졌다. 잠시 생각에 홀려서 발걸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사이 거리에 난 작은 홈에 발끝이 걸렸던 모양이다. 가까스로 두 팔을 내밀어 보기는 했지만,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한 쪽 팔꿈치 뼈끝이 떨어져 나갔던 모양이다.


그 후의 사정은 말할 나위도 없다. 석고붕대를 칭칭 감고 있는 부러진 팔도 힘들고, 그 팔을 둘러메고 있는 짧은 목도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내 팔인데 어찌 이리 무거운지 한숨이 절로 난다. 팔이 그러니 힘든 것은 팔과 목뿐이려니 했다. 팔 때문에 글쓰기에 시간이 엄청 걸리려니 했지 생각을 하는 데는 아무 상관이 없을 것이다 싶었다.


그런데 일이 그렇지가 않았다. 두 손과 머리가 합심해서 힘 들이지 않고 해내던 글쓰기가 팔 한 쪽이 협력을 안 하는 순간부터 거의 제대로 되지 않기 시작한 것이다. 머리만 필요한 일이라면 손이야 내 것이든 남의 것이든 빌려서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일 텐데 말이다. 그런데 글을 쓰는데 걸리는 시간만이 아니라 글감을 생각해내는 것조차 영 시원찮아지니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다. 마치 그 동안 머리가 아니라 온 몸이 글을 생각해낸 것처럼 불편한 팔은 생각의 쓰기가 아니라 생각하기 그 자체에서 멈칫거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실은 인간이 사실 그런 면이 있다고 한다. 무엇이든지 이미 선을 넘은 일에 있어서는 역행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평소 일정한 속도로 생각하며 글쓰기에 익숙해 지고마니 그보다 훨씬 느린 속도에 적응하는 것이 무척 쉽지 않은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점을 '경로'나 '유형화' 라는 말을 써서 설명할 수도 있다고 한다.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 필요한 역할을 효율적으로 잘 해내기 위해서는 인간은 스스로 터득한 효율적인 방법을 적절히 구사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자신에게 익숙한 경로를 정해놓고 나중에는 무의식적으로 그런 방식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경로를 만드는 것은 인간과 세상 만물의 이치에 속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은 변하기가 죽기보다 어렵다'란 세간의 말이 영 틀린 소리가 아닐 수 있다.
자신이 터득한 삶의 방식이 부조리함을 깨닫고 스스로를 새롭게 하는 또 다른 경로를 만들어내는 일이란 사실 다시 태어나기와 다름없는 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또한 역으로 누군가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싶다면 당연히 그의 경로를 유심히 살필 일이다. 그리고 그런 경로를 만드는데 손발 없이 머리만으로 될 일도 아니고, 머리는 아랑 곳 없는데 손발로만 할 수도 없는 것이다.


따라서 한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의 참된 삶의 경로를 보고 싶다면 조심스레 이리저리 살펴보아야 한다. 말로는 사과를 한다고 잘못했다고 하면서 몸은 영 물러설 기세가 보이지 않거나, 그를 넘어 심지어 다른 이를 노려보기조차 한다면 그런 사람들의 마음은 뻔한 것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자기가 걸어가는 길이 자기의 삶과 경로가 되는 것이다. 정말 그것을 두려워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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