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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이야기 152]눈물 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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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이야기 152]눈물 나는 날
  • 성태숙 시민기자
  • 승인 2016.10.21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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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아들과 신문이 엇갈리듯 들어온다. 밤새도록 PC방에서 일을 끝낸 아들은 햇볕 한 줌 없는 일터에서 젊음도 함께 사그라지는 것인지 초췌한 몰골로 비척비척 들어와 제 방으로 가 픽 쓰러진다.
 
그리곤 대부분의 정규직들과 미래를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이 환한 햇살 아래 온종일을 보낼 동안 마치 세상을 외면하듯 깊은 잠에 곯아떨어진다. 그래서인지 제가 들어오면서 문 앞에 떨어져 있는 조간신문을 주워오는 수고는 절대 않는다. 세상사를 안보고 살겠다는 심보를 이리 철저히 지킬 필요는 없을 텐데 말이다.
 
오늘도 신문에는 그 공주님 이야기가 어찌 나와 있을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높은 분의 최측근으로 후광을 입은 부모를 둔 탓에 말 타고 하인 부리며 독일의 성에 산다고 하는 공주님은 하루하루가 삭아가는 딱 내 아들 나이다.
 
신문을 읽으며 치밀어 오르는 역정을 한편으로 겨우 달래가며 다시금 굳게 닫힌 아들 방문을 바라본다. 이런 말을 하기는 뭣하지만, 때로는 불쑥 '네 엄마가 나라서 미안하구나'하는 공연한 생각을 가눌 길이 없다.
 
그런 우리 아이들의 삶을 누군가는 '하청인생'이라고 했다. 바로 지난주 구로중학교에 강의를 왔던 전 국회의원 은수미씨가 했던 말이다.
 
은수미씨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구로중학교 박복희 선생님 덕분이었다. 원래는 교사들만이 참여할 수 있는 직무연수를 지역 사람들도 와서 들을 수 있도록 자리를 열어주셨던 것이다.
 
은수미씨의 강의를 들으며 나는 복받쳐 올랐다. 물론 내 몸의 절반밖에는 안되어 보이는 그녀가 강단 있게 인생을 살아온 모습도 가슴을 뜨겁게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편의점 점주들의 삶과 알바와 비정규직으로 대표되는 청년들의 세상살이를 들으며 우리 자신들과 우리 아이들이 한줌의 희망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에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다.
 
누구에게나 제가 살아가는 시대는 다 힘든 일일 것이다. 희망도 아무렇게나 불쑥 찾아오는 것도 아닐 것이고, 죽을 만큼 노력하면 살 길이 열린다는 말이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은수미씨도 살짝 그런 고민을 했던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비쳐보였다. 지금의 시대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기도 한데 왜 우리들에게만 더 힘들게 다가오는 것처럼 보일까 하고 말이다.
 
안타깝게도 난 그 답을 듣기 전에 자리를 떠야 했다. 방정맞은 일상이 온전히 그 자리에 집중을 할 수 없도록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리를 뜨는 뒤통수에 대고 그녀는 일격을 날렸다. 가기 전에 이 한 마디만은 명심하고 가라는 듯이 말이다.
 
우리 시대는 좀 더 젊은이들을 격려하고 앞세우고 밀어주는 것이 필요하단 이야기였다. 자리를 뜨는데 더 마음을 쓰느라 뒤에서 들려오는 말을 제대로 듣진 못했지만 마치 뒤에서 날아와 척수에 꽂히는 말처럼 그런 이야기가 들렸다.
 
그리고 그녀가 작고 마른 체구로 열정적인 강연을 하는 동안 구석 한 켠에는 오늘의 자리를 마련한 박복희 선생님께서 역시나 자그마한 몸으로 한 번 자리에 앉지도 않고 줄곧 모두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 역시 온 종일 아이들을 가르치느라 한바탕을 치루고 난 후다.
 
그런데도 강연자의 귀중한 말을 한마디도 허튼 곳으로는 흘려보내지 않겠다는 듯 흐트러짐 없는 모습으로 모두를 지켜 서있다. 마치 오랜만에 두 선생님 앞에서 제대로 가르침을 받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다음날은 구로중학교에서 아이들이 준비한 길놀이가 펼쳐졌다. 큰일을 치르느라 애도 많고 탈도 많았던 것 같지만 축제에 참여한 아이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반짝거렸다.
 
바로 이 사람들이다. 우리가 격려하고, 앞세우고, 믿고 따라야 하는 사람들은 말이다. 그 장한 모습과 어젯밤의 가르침에 가슴이 먹먹해서 장다리를 타고 성큼성큼 걸어오는 모습을 눈부시게 한참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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