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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이야기 147]그립지만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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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이야기 147]그립지만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
  • 성태숙 시민기자
  • 승인 2016.09.12 09: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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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구건강가정지원센터 10주년 행사에 다녀왔다. 파랑새 아래 아이들이 툭하면 놀러나가던 구로3동 동사무소 바로 곁에서 자그마하게 자리를 잡았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그게 벌써 10년이었던가 보다.

파랑새 아이들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동사무소 곁을 지나다보면 때로는 으슥한 밤인데도 아직 불이 환한 센터를 가끔 볼 수 있었다. 때로는 잠이 들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늦은 시각이었는데도, 유리 현관문 안쪽에서는 아직도 정신없이 한창 일을 하고 있다. 때로는 '나만 이렇게 애쓰고 사는 게 아니구나' 싶은 반가운 마음에 또 때로는 '나야 길 하나만 건너면 이제 집이지만 저 분들은 도대체 언제 집엘 가려고 저러나?' 싶은 안타까운 생각에 나도 모르게 아는 척을 할 때도 있었다.

분명 방해를 받아 귀찮기도 했으련만 그 때마다 늘 반갑게 활짝 웃으며 잠긴 문을 열어주곤 했었다. 그러면서 오히려 "왜 이제 집엘 가냐?"고 된통 다정한 지청구를 듣기도 했었다. 바로 3동 놀이터 곁에 파랑새와 건강가정지원센터가 있었던 그립던 때다.

그리고 그 보다 더 지나간 시절에는 그 곳에 내 어린 시절과 은주네 집이 있었다. 예쁘고 얌전하고 다정한 은주와 키 크고 유쾌하고 활달한 유정이, 어른스럽고 신중하고 차분한 옥련이와 놀다말고도 나중에 보면 혼자 책을 읽고 했다는 나까지 우리는 4총사였다.

구로남초등학교(현재 구로남초) 4학년 때부터 한 반을 이루어 졸업하기까지 꼬박 3년 동안 반을 바꾸지 않았던 특별한 학교의 운영방식 덕분에 어린 시절의 한 때를 함께 지낼 수 있었던 우리들의 아지트가 바로 은주네 집과 집 앞의 3동 놀이터였다.

3년을 내내 붙어 다니며 우리들에게는 너무 특별한 그러나 말해놓고 보면 남들과 하등 다를 바 없는 그런 찰떡같은 시간을 보내고 우리는 갓 생겨난 영서중학교로 진학을 하며 차차로 다른 사람들과도 어울리게 되었다.

은주네 집에는 마당이 있었고, 마당 한쪽에는 수돗가와 아이들을 위해 따로 만든 가건물 별채가 있었다. 우리는 주로 은주네 집 마당에서 놀거나 아니면 그 별채에 있는 은주와 은주 언니방에 모여 노닥거리곤 했다. 마당에서 하는 놀이는 아무데서나 굴러다니는 작은 돌을 있는대로 모아서 하던 공기놀이거나, 땅따먹기 같은 것이었다. 그러다 이런저런 것도 다 심드렁해지면 몇 발짝 떨어진 곳에 있던 3동 놀이터로 놀러 나가기도 했었다.

실은 그 사람들을 잃고 나는 한없이 외로웠었다. 그 때는 왜 외로운 것인지 그것을 가늠할 힘조차 없어서 몰랐지만 서로가 작은 위안과 언덕이 되어주던 그런 친구들을 어느 날 갑자기 잃게 되었다는 것이 힘겨운 일이었음을 이제야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해져서 만난 구로남국민학교와 영서중학교 등을 나온 우리들이 만나 서로 나눈 어린 시절의 집안 이야기며 학교 이야기들은 깜짝 놀랄만한 일들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몹시 그립기도 하지만 어쩌면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은 그런 어린 시절을 우리들은 구로에서 보내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 삶의 자리를 보듬으려 들어선 것이 어쩌면 바로 지금의 건강가정지원센터일지도 모르겠다.

여름이 되면 조금 헐렁한 런닝구를 입고 계시던 은주네 아버님은 벌써 소천을 하신지 꽤 되셨다고 한다. 어르신들은 재개발의 열풍 속에서 힘든 일을 겪고 구로를 떠나게 된 것 같다. 아마 지금의 우리들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지금의 건강가정지원센터처럼 아무도 의지할 만한 곳이 없는 상황에서 속상한 일을 여럿 당하시며 힘든 과정을 겪으셨던 것 같다. 4총사 중 은주네가 당한 일이 두고두고 가슴이 아파 친구를 다시 만난 후 아린 마음이 좀체 쉽게 가셔지질 않는다.

1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건강가정지원센터는 가리봉으로 이전을 준비하는 모양이다. 거기도 우리같은 4총사가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건강가정지원센터가 곁에 있으니 4총사는 좀 더 행복을 꿈꿔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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