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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이야기 145]'꽃'으로 다가온 구로역 북쪽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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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이야기 145]'꽃'으로 다가온 구로역 북쪽광장
  • 성태숙 시민기자
  • 승인 2016.08.29 09: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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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역 북쪽 광장은 아무 의미도 없는 곳이었다. 대학원 수업을 끝내고 엇비슷한 방향으로 가는 다른 사람의 차를 얻어 타고 근처에 내려서도 집으로 가는 마을버스를 타기에도 애매한 곳이어서 한 번도 제대로 머릿속에 들어오는 장소가 아니었다. 공구상가 쪽으로 걸어가 마을버스를 탈 것이므로 북쪽 광장까지 눈길을 줄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대로변 양쪽으로 철제 셔터가 내려진 공구상가의 황량함이 하루가 다 가는 시간의 피곤함에 뒤섞여 늦은 밤 그런 풍경이 주는 기분에 취해 그 거리에 서 있는 것도 그만저만하다 싶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광복절 이후 상황은 달라졌다. 광복절에 마침내 소녀상이 구로역 북쪽 광장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작은 일이 아닌데 조금씩 힘을 모아 뚝딱뚝딱 일을 치러낸 걸 보면서 새삼 놀라운 기분을 떨치지 못한다.

신도림으로 일을 보러 가는 차 안에서 운전자를 뺀 동승객 두 사람은 북쪽 광장을 지나치는 길에서 모두 약속이나 한 듯이 한 곳으로 시선을 모았다. 바로 소녀상이 세워진 그곳으로 말이다. 그렇게 이제 구로역 북쪽 광장은 우리에게 다가와 하나의 꽃이 되었다.

"샘, 근데 원래 소녀상이 모자를 쓰고 있었나?" 깜짝 놀란 목소리가 갑자기 차 뒤편에서 들려온다. "아니요. 아! 누군가 날이 더우니까 힘들지 말라고 소녀상에 모자를 씌워 준 것 같아요."

얼떨결에 무슨 일인지 알겠다 싶어 얼른 답을 한다. 신문 기사를 보면 가끔 날이 추우면 목도리를 둘러주기도 한다던데 누군가 북쪽 광장의 소녀상을 부러 찾아와 더운 날씨를 염려해서 챙 넓은 모자를 씌워놓고 갔다.

소녀상 기금을 건립할 때 파랑새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작은 벼룩시장을 열었더랬다. 자기가 쓰던 학용품이랑 장난감 등을 가져와서 서로서로 사주며 기금을 모아서 이를 소녀상을 건립하는 데 보탰다. 그리고 구구단으로 활동을 하는 친구들은 제막식 무대에 올라 기쁨의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다. 아주 자세하게 이야기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이야기를 한 것이 아이들 마음에도 어떤 파문을 일게 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 며칠 후 파랑새 아이들과 아주 다른 소녀들에 대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어떤 걸그룹 가수들이 1주년 콘서트를 한다는데 우연히 그 곳에 참석을 하게 된 것이다. 아이들조차 이름을 따지고 취향이 분명해서인지 생각보다 호응이 시들해서 정말 소수만이 일요일 오후에 기괴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그런 대중문화에는 익숙하지 않다보니 생각했던 것과 많은 것이 달랐는데 특히 깜짝 놀랐던 것은 관객들 대부분이 남성들이란 사실이다. 잘 알지 못하는 노래였는데 관객들 대부분이 너무 우렁찬 목소리로 후렴구마다 소위 "떼 창'으로 함께 따라 부르는 장면에선 왠지 그런 살짝 으스스해지기도 했다. 게다가 혹시나 남성 관객들을 의식해서 과도하게 섹스어필한 장면들이 공연 중간에 나오면 아이들 보기에 난감할 것 같아 앉으면서부터 좌불안석이어서 도저히 편한 마음으로 공연을 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단 한 명을 빼놓고는 모두 미성년인 그룹 멤버들의 특성 때문인지 공연 내내 그래도 '순수하고 귀여운 여자 친구'의 분위기를 만드는 바람에 겨우 무사히 공연 관람을 끝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겨우 최악을 면했다는 것뿐이다. 콘서트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새벽 4시가 넘도록 연습을 하는 모습이나 그 외 이런저런 모양새들이 그저 맘 편히 공연을 즐기게 만들진 못해서 아이들이 좋다고 하는데 나는 별로 그런 기분이 아니었던 것이다.

때로는 인간이 무엇이든 악용하는 것이 좌절스럽다. 사랑스럽고 순수한 것들, 그래서 바라보고만 있어도 흐뭇한 어떤 모습들도 때로는 전쟁에, 때로는 돈벌이에 무참히 짓밟히고 남발되는 세태가 참 입맛을 쓰게 한다. 정말 소녀의 가슴에 철심이 필요한 시대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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