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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사이로] 여름을 맞이하는 두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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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사이로] 여름을 맞이하는 두려움
  • 성태숙 시민기자
  • 승인 2023.05.12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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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태숙
성태숙

지금은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변화할 것'이라는 사실만 빼고는 그 어느 것도 장담할 수 없는 시대라고 한다. 그러나 지금 이런 변화가 더욱 두려운 것은 과연 잘적응해 갈 수 있을까 겁이 날 정도로 빠른 속도의 문제가 더해지기 때문이다.

인간이 만든 문명 세계의 변화도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광속을 자랑하고 있지만, 자연이 보이는 변화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세계가 붕괴되고 있는 듯한 심연의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여름이 다가오고 있다. 올해는 아직 한 마리의 나비도 보지 못한 채 여름을 목전에 두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의 건강을 위협할 정도로 뜨겁고 무서운 여름이 벌써 시작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런 속에서 한 해, 한 해를 커나가야 할 아이들이 안쓰럽고 또 안쓰럽기만 하다. 또한 부모님을 비롯한 어른들의 하루가 얼마나 더 힘드실까 걱정스럽기만 하다.

그런 걱정을 하는 눈길은 참담한 모습을 하고 있는 베란다 유리창에 가서 머문다. 흉가나 철거 직전의 건물 출입구에 X자 표시를 해놓는 것처럼 안방 밖 베란다 유리창에는 X자 테이프의 흔적이 보기 흉하게 남아 있다.

잘 쓰지도 않을 짐을 켜켜이 쌓아 놓아 사람이 편히 오고 가기도 힘든 베란다 유리창에는 지난 여름 붙여 놓은 X자 모양의 테이프를 잘 제거하지 못한 탓에 생긴 흔적이 보기 싫게 남아 있다. 실은 X자만이 아니다. 유리창을 가로질러 길게 청테이프를 붙여 놓기도 했다. 그런 난리의 흔적들이 안방에서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게 그나마 위안이다. 

유리창이 이런 곤욕을 치르게 된 것은 날씨가 변하면서 생긴 일이다. 예전에도 장마철이 있었고, 태풍이 불기도 하였다. 그래도 집 안에 들어 앉아있으면 아무리 험한 날씨에도 안심하고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유리창이나 벽을 충분히 믿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비와 바람과 폭염이 걷잡을 수 없이 사나워지면서 낡고 오래된 아파트 유리창이 근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다른 집들은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으나 우리 집 유리창은 에어컨 실외기를 빼는데 필요한 공간을 마련하느라 조금 틈을 벌려놓았다. 유리창을 제대로 꼭 닫고 있어도 견딜까 말까 한 허술한 유리창인데, 거기에 한 뼘쯤 제대로 닫히지도 않는 취약한 구조까지 더해지니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이면 유리창은 마구 비명을 질러댄다. 

그때 누군가 테이프를 X자로 붙여보라고 해서 지금의 상처가 생기게 되었다. 또 신문을 붙여보라고도 해서 신문을 덕지덕지 붙여보기도 했다. 어린이날 전날 밤에도 마치 틈새를 노려 목숨줄을 끊어놓을 것처럼 으르렁거리는 짐승의 울음 같은 바람 소리를 들으며 덜덜 떠는 유리창을 한참 붙들고 있었다. 

한때는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높은 층의 한갓진 귀퉁이에서 유리창과 출입문을 활짝 열어놓고 한껏 바람을 들이며 사는 맛도 있었는데 말이다. 더운 여름밤이면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문을 활짝 열고 다시 잠을 청하기도 했었다. 

이제 그런 모든 것들도 변해가고 있다. 그동안 이 지구별을 함부로 다루며 산 대가를 치르는 건지도 모르겠다. 매몰차게, 냉정하게 몰아치는 그 바람 소리가 때로는 어머니 지구별의 매서운 채찍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뒤늦게 나약한 유리창 앞에 테이프 대신 나 자신을 X자로 세워놓고 후회를 해 보지만 소용없는 일이다. 

올여름 더위와 함께 불어올 바람이 벌써 두럽다. 이제는 여름밤을 못 견디고 출입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잠을 청하는 속 없는 엄마를 걱정해주던 아들들도 곁을 지키지 못하는 밤들이 많다. 

그렇게 홀로 깨어 있는 밤, 덜덜 떠는 유리창을 온몸으로 달래가며 밤거리 여기저기를 미친 듯 불어대는 거센 바람을 지켜보며 보내야 할 이 여름이 다가온다는 게 너무나 두렵다. 

성태숙 시민기자는 구로2동에 소재한 구로파랑새나눔터 지역아동센터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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