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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이야기 140]출근길이 즐거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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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이야기 140]출근길이 즐거운 이유
  • 성태숙 시민기자
  • 승인 2016.06.26 10: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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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을 늘 조금 에둘러간다. 두서너 군데 들렀다 갈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내 보물창고로, 다름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경비실 서너 군데다. 주민들이 밤사이 무슨 물건들을 또 필요 없다고 내놓았나 하고 살펴보기 위해서다. 액자나 화분, 바구니나 이런저런 작은 소품들을 거기서 얻는 경우가 많다.

지난밤만 하더라도 어느 집 한 귀퉁이에서 저도 같이 그 집 살림이라고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을 것들이 어느 순간 마음이 변한 주인이 밖으로 내다놓는 바람에 충격을 받고 망연자실해 있을 아이들 중 몇을 구해주기 위해서다. 하긴 내가 그렇게 알뜰을 떨지 않아도 다 누군가 필요한 사람이 잘 데려다 써주겠지만 그래도 괜히 나도 한 번 기웃거려본다.

그렇게 모인 바구니 3개는 파랑새 부엌에 옹기종기 모여서 작은 정원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한 때는 근사한 와인병을 품고 있었을 나무 상자도 지금은 빨강, 파랑, 노랑꽃들이 심어져 있는 작은 화분 세 개를 대신 품에 안고 있다. 그 상자는 옆구리며 밑바닥까지 떨어져 나가 산산조각도 나고 모서리는 거뭇거뭇 제법 썩어 들어가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지만 난 또 그런 모습을 '세월의 연륜이 쌓인 것'으로 쳐주기로 하고 데려왔던 것이다. 그리고 꽃 화분을 산 것도 바로 그 버려진 나무 상자의 쓰임새를 높여주기 위한 것이었으니 남들이 들으면 무에 그럴 게 있는가 할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병이라면 병인 게다. 실은 나도 아는 병이다. 남들에게 버림받고 별로 하잘 것 없다고 여겨지는 것들에 먼저 눈이 가는 것도 별로 좋은 일은 아니란 것을 이제 나이가 들고 보니 알겠다. 그것은 번듯한 세상에서 자신이 없어 주춤주춤 물러서는 일이 많은 사람들이나 하는 모양새란 것을 말이다.

그래도 그런 것들이 여기저기 자리를 잡고 있는 파랑새로 오는 길이 요즘은 새삼 든든한 기분이 드는 것은 바로 시장을 지날 때 드는 풍성한 느낌 때문이다. 시장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모퉁이를 따라 가게 벽을 모두 틔워놓은 야채와 과일을 파는 가게를 만나면서부터 특히 그렇다.

아침부터 벌써 박스나 큰 비닐봉지에 담긴 과일과 야채들이 그득히 들어차 있고, 길바닥 한 가운데까지 물건을 내놓고 정리를 하느라 한참 부산한 모습에서 사는 건 부지런해야 하는 것이란 느낌이 물씬 풍겨온다.

맞은 편 골목으로 들어서면 언제 생겼는지 모를 쌀가게에 마치 사열식이라도 하듯이 쌀가마니들을 길을 따라 쭉 쌓아올려 놓은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무슨 6.25 난리를 겪거나 보릿고개 흉년을 보낸 것도 아닌데, 나는 이런 모습이 싫지 않다.

싫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쌀가게 옆에 현미를 도정해주는 가게까지 바라보고 나면 흐뭇하다 못해 배가 든든해진 심정이 되어 출근을 하는 게 썩 기분이 좋아진다. 허기진 마음은 이렇게 먹을 수 있는 게 넉넉한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달래지는 모양이다. 누군가 검정색 비닐봉지에 뭔지 모를 곡식을 조금 사가는 모습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래도 이만하면 됐다'하고 괜한 소리를 마음 속으로 해본다. 이런 시절에, 그래도 이만한 풍요로움을 지닌 곳에 태어나게 해주심에 다시 한 번 감사드려야 될 것 같은 마음이다. 이웃들이 굶고 힘들어했더라면 내가 당하는 것도 당하는 것이지만 그걸 지켜봐야 하는 마음도 얼마나 괴로웠겠는가? 그래도 작은 시장에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소박한 먹거리들과 일용품들이 있음에 언젠가는 꼭 고마운 마음을 알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더랬다.

시장 골목을 완전히 빠져나오면 다시 한 번 기도를 드린다. 누군가 세상을 돌보는 이가 있다면 모두가 이정도의 풍요는 누리고 살 수 있도록 우리가 서로를 돌보는 존재가 될 수 있도록 제발 우리의 마음을 돌봐달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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