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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사이로] 새해를 맞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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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사이로] 새해를 맞는 기도
  • 구로타임즈
  • 승인 2022.12.30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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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예전 같지 않다. 그러나 세상의 변화란 당연한 이치임에도 변하는 세상을 따라잡지 못하는 마음은 세상을 탓하고만 싶어진다. 긴 경기침체와 실물 소비경제의 위축이 큰 영향을 끼친 탓인지 연말인데도 흥청거리는 풍경은 찾아볼 수 없게 된 지 오래다. 

그런 상념에 잠겨 건널목을 건너는데 자칫 사고가 날 뻔한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골목을 빠져 나와 우회전을 하려는 차 한 대가 도로 쪽으로 몸체를 쭉 빼면서 직진하던 차량과 부딪칠 뻔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래도 뒷차가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던지 무사히 순간을 넘기는 것을 보고 건널목을 건너왔다. 

하지만 그 순간 내 몸은 빠르게 몇 년 전으로 되돌아갔다. 지금은 전혀 운전을 하고 있지 않지만 20여 년 전 나도 잠시 운전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운전을 막 배워 서투르던 차에 하필이면 우리나라를 떠나서 운전을 하며 지낼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쳐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지역에서 비슷한 사고를 목격했던 것이다. 바로 오늘처럼 직진하던 차량이 우회전을 하려던 차량과 부딪혀 사고가 났던 것이다. 마침 좌회전을 하려던 내 차도 목을 쭉 빼고 길을 살펴보고 있던 중 건너편 도로에서 차 두 대가 부딪히는 것을 직접 목격하게 되었다.

조금만 침착하게 생각하면 건너편 도로의 사고가 내 탓일 리가 없다는 것은 뻔한 사실이다. 하지만 당시 막 운전을 시작해 모든 게 너무 서툴렀던 지라 그 사고가 혹시 나 때문에 벌어진 게 아닌가 싶어 덜컥 겁이 났었다. 여성 운전자가 들것에 실려 가는 것을 보고는 그만 길바닥에 주저앉아 숨도 못 쉴 정도로 두려움에 떨었다. 가까스로 집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울음이 그치지 않아 한동안 애를 먹었다. "혹시 나 때문에 그랬으면 어떡하나?" 전전긍긍한 마음이 들면서도 설마 그런 게 밝혀지면 생면부지 이국땅에서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잡혀갈까 봐 벌벌 떨기만 하였다.

물론 당연한 일이지만 그 후 무사히 귀국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몸은 무사히 귀국을 했음에도 마음은 무사 귀국이 되지 않았다. 그 후로도 한동안 후유증에 시달리게 되었던 것이다.

가장 전형적인 증상은 차를 타기 어려워진 것이다. 버스나 승용차를 타고 가다 보면 옆 차가 와서 타고 있는 차량을 박게 될 것 같은 착각에 전전긍긍하는 증세가 생겼다. 차를 타면 손잡이를 있는 힘껏 꼭 잡고 온몸에 힘을 주고 낑낑거리곤 하였다. 발바닥에 있는 대로 힘을 주면 내 몸으로 차량을 멈추거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것처럼 잔뜩 몸에 힘을 주고 용을 쓰곤 하였다, 때로는 참지 못하고 그만 소리를 지르기도 하였다. 그러면 곁에 있던 운전자가 깜짝 놀라서 정말 좋지 않은 상황이 벌어질 뻔도 하였다. 

아마도 이런 증세는 PTSD(외상 후 스트레스장애)의 일환이 아니었던가 싶다. 믈론 왜 생긴 줄 아는 일이고, 노상 차를 타야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나는 적절한 치료를 받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저 시간이 약이려니 하고 그냥 놔두고 달래가며 살아왔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증상들이 없어진 지 좀 되었다. 그러나 오늘처럼 비슷한 상황을 보며 가슴이 막 뛰기 시작하는 것을 보면 분명 증세가 완전히 말끔히 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적절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다가 오늘처럼 방아쇠가 되는 일을 만나면 불쑥 튀어나와 온 마음을 뒤흔들며 평안을 잠식해갈 것이다. 그것이 트라우마의 특징이라고 했다. 

아마도 이 새해를 그렇게 맞이하는 안타까운 사정들을 가진 분들이 우리 주변에는 적지 않게 계실 것이다. 그런 이웃으로는 이태원 참사의 유가족들이 무엇보다 가장 먼저 떠 오른다. 

그런 충격과 공포와 슬픔은 과연 가시기나 할 수 있는 것일까? 얼마나 많은 새해를 맞이해야 그런 슬픔을 담담한 마음으로 마주하게 될까 전혀 가늠되지 않는다. 새해의 소망과 기도를 그런 분들을 위해 드려본다. 우리들 모두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서로 깨닫고 서로를 귀하게 여기며 지낼 수 있는 그런 새해가 되기를 염원해본다. 그래서 2023년에는 공감과 위로와 연대와 기도가 충만한 새상이 되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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