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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사이로] 뭣이 중헌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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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사이로] 뭣이 중헌디
  • 성태숙 (구로파랑새나눔터지역아동센터징)
  • 승인 2022.10.25 09: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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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잠시 성북구를 갈 일이 있었다. 같은 서울이지만 성북은 심리적 거리가 꽤 되는 낯선 곳이다. 목적지를 찾아 두리번거렸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런데 그 와중에 거리의 무언가가 자꾸 눈길을 끌었다.

처음에는 무엇인지 쉽게 알아차리지 못했다. 거리가 좀 환해 보이기도 하는 그 느낌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한참을 두리번거렸다. '역시 낯설어서 그런 거야' 떠오르는 게 딱히 무엇인지를 알 수 없어 그만하고 말려던 때였다. 바로 그때 그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두 젊은이의 모습이었다. 아마 데이트를 하는 중인 것 같았다. 차림새로 보면 대학생일 것도 같은데, 젊은 남자는 데이트 상대의 핸드백을 대신 들어주고 있었다. 환하게 웃고 있는 두 사람 때문에 거리가 환하게 보였던 걸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 직후 우리 주변에선 그런 장면을 보기 어렵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물론 디지털 단지나 신도림역 근처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구로구청 인근에서는 확실히 보기 힘든 장면이다. 우리 주변에서 자주 보이는 것은 주민들이 바쁘게 일상을 보내는 모습들이다.

눈과 귀를 길들인 일상을 낯선 것으로 보기는 원래 어렵기 마련이다. 만약 이런 말을 듣고 즉각 '아닌데, 난 늘 내 주변이 낯설게 느껴지던 데...'하는 생각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필시 둘 중 하나다. 어떤 궁극의 경지에 도달했거나, 아니면 의사를 만나서 지금 괜찮은지 빨리 진단을 받아보아야 한다. 

우리는 그렇게 생겨 먹은 존재라고 한다. 일단 익숙해진 것들은 무의식의 심연에 던져놓아 아무런 삶의 에너지를 쓰지 않도록 설계된 존재란 것이다. 익숙해지면 보되 보이지 않고, 듣되 들리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식들은 부모의 애끓는 고함을 그리도 간단히 못 듣고 마는 것이다. 안타깝고 목이 터져나가지만 안 들리는데 참 어쩔 도리가 없다. 

그것은 우리가 굉장히 창조적 존재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기도 하다. 인간과 맥락 없이 존재하는 이 세계에 우리 인간만의 고유한 질서와 문화의 질감들을 가로 새기기 위해 우리에게는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생겨난 현상이다. 그런 에너지를 일상의 것들에 흩뿌리며 살지 않도록 우리는 그렇게 고도화된 존재로 변해갔다.

그런 과정에서 우리가 낳고자 하는 것은 결국 어떤 문화적 상태이다. 인간이기에 누리는 것들 그래서 또 그 속에서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하는 것이 그런 문화의 힘이다. 물론 그 안에서 자연과 동물이 배타적 위치에 서는 것은 아니다. 함께 살아가고 서로를 이롭게 하는 존재로서 인간의 위치를 잘 가늠해야 함은 가장 중요한 전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상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특정한 문화적 자극들이 필요해진다. 그렇게 축적된 창조적 에너지들이 잘 발현될 수 있도록 어떤 풍토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삶의 의의와 방향을 잃고 심각한 상황에 처해질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 삶의 풍토는 어떨까? 위가 바뀌면 저 밑까지 거침없는 물갈이가 일어난다. 지금껏 열심히 무엇을 해 왔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일이 된다. 갑자기 전혀 다른 맥락들이 강조되거나 엇비슷한 일들이 살짝 이름만 바꾸고 나와서 어설프게 설쳐대기도 한다. 때로는 그런 물갈이가 너무 심해서 어항 속의 민초들은 배앓이와 설사에 곤죽이 될 지경이다. 
 지금만이 아니다. 그때도 그랬다. 그저 그때는 누가 좋았고, 지금은 또 다른 누군가가 좋다는 차이만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매번 너무 그러지 좀 말자.
 하나를 좀 진득하게 익혀서 남은 에너지를 동네와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는 데 써볼 수 있도록, 제발 위에 계신 분들 물갈이 좀 조심조심 해주시란 말입니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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