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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수 칼럼] 관료주의가 낳은 '대량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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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수 칼럼] 관료주의가 낳은 '대량학살'
  • 하승수(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녹색전환연구소 이사)
  • 승인 2021.04.23 15: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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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들에게는 높은 계란 가격으로, 산란계 등 가금류를 키우던 농가에게는 엄청난 피해로 다가온 일이 있다.

바로 작년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 전국에서 총 2,904만 마리의 가금류가 '살처분'이라는 이름으로 죽임을 당한 것이다.

달걀을 낳는 산란계의 경우에는 전국 7,385만 마리 중 22.7%에 해당하는 1,674만여 마리가 죽임을 당했다. 

이 참사는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라는 가축전염병의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예방적 살처분'이라는 이름으로 '질병이 발생한 농장에서 3km 이내에는 모두 죽이라'는 마구잡이식 살처분을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올해 2월 15일 뒤늦게 살처분 반경을 1km로 줄였지만, 이미 수많은 생명이 사라진 후였다. 

이렇게 농림축산식품부가 '예방적 살처분'을 밀어붙인 것은 현재의 가축전염병예방법과도 맞지 않다.

현행 가축전염병예방법에서는 '살처분'을 '일반적 살처분'과 '예방적 살처분'으로 구분하고 있다. 

'일반적 살처분'은 가축전염병의 감염 등을 확인한 후에 살처분을 하는 것이다.

반면에 '예방적 살처분'은 감염 여부와 관계없이 일정한 범위 내에 있는 가축을 죽이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예방적 살처분'을 명령할 수 있는 명령권자가 가축전염병예방법 상으로는 시장.군수.구청장으로 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의사결정을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법치주의 원칙에도 반하는 것이며, 농림축산식품부가 기초지방자치단체장의 권한을 침해하는 일종의 '월권'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방분권을 강조하는 시대에 법으로 규정된 기초지방자치단체장의 권한을 무시하는 것이니, 시대착오적인 행태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이런 잘못된 행태로 인해 동물복지농장들조차도 무차별적인 살처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번 겨울에 논란이 된 경기도 화성시 '산안농장'의 경우에는 동물복지농장임에도 산란계 3만 7천마리를 살처분당하게 됐다.

그와 함께 130만개의 계란도 폐기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산안농장에서는 '건강한 닭'이기 때문에 '예방적 살처분'을 재검토해달라고 각계에 요청했지만, 농림축산식품부는 '형평성' 운운하면서 살처분을 하도록 밀어붙인 것이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관료주의와 행정편의주의에 빠진 행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식의 무차별적인 '예방적 살처분'은 큰 문제를 낳고 있다.

달걀가격은 뛰어올라서 소비자들에게도 부담을 주고 있다.

너무 많은 산란계를 죽이는 바람에 달걀이 모자라게 되자 외국에서 달걀을 수입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산란계 농장의 경우에는, 정부로부터 지급받는 '살처분 보상금'으로는 새로 병아리를 들여올 수도 없다고 막막함을 호소하고 있다. 

다른 한편 이런 무분별한 '예방적 살처분'으로 인한 국가공동체의 피해도 매우 크다.

그동안 가축전염병이 발생할 때마다 강행된 '살처분'으로 인해 전 국토에 조성된 살처분 매몰지는 6,188개에 달한다.

이 매몰지로 인한 환경오염 우려도 매우 크다. 

또한 무분별한 살처분으로 인해 지출된 국가예산도 엄청난 규모이다.

농장들이 입은 손해를 제대로 보상해주는 것도 아니지만, 워낙 어마어마한 규모로 살처분을 했기 때문에 매년 수백, 수천억원의 예산이 지출되고 있다.

2017년의 경우에는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및 구제역 발생으로 2,452억원의 국가예산이 '살처분 보상금'으로 사용됐다.

예산이 모자라자 정부는 예비비, 재해대책비, FTA지원기금에서 돈을 끌어다가 사용했다. 

이처럼 무차별적인 '예방적 살처분' 정책은 소비자, 농장, 국가공동체 모두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다.

생명존중이라는 차원에서 보더라도 너무나 문제가 심각하다.

반복적으로 생명체를 대량학살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누구하나 책임지는 주체가 없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중앙가축방역심의위원회의 회의록, 회의결과조차도 비공개하는 밀실행정을 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를 감독하고 허술한 법규정을 보완해야 할 국회는 책임있는 논의도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무차별적인 '예방적 살처분'에 대해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또한 지난 겨울에 이뤄진 '예방적 살처분'의 과정에 대해서는 철저한 진상규명도 필요하다.

또다시 이런 일들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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