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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떨리는 손으로 받아 든 장미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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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떨리는 손으로 받아 든 장미꽃
  • 성태숙 시민기자
  • 승인 2021.04.16 17: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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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여성의 날인 3월8일을 기념하여 한 주간 작은 행사들이 지역의 곳곳에서 열렸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여성의 날을 기념한 장미꽃 배달도 있었다.

고 노회찬 의원은 여성의 날이면 주변의 여성들에게 장미꽃을 선물해왔다고 하는데, 이것이 알음알음 알려져 구로에서도 그런 행사가 기획된 줄 안다.
 
여성의 날 장미꽃을 선물해온 이는 또 다른 구로의 여성들이었다.

지역일이라면 헌신적으로 발 벗고 나서는 몇 분들이 새벽같이 시장을 가서 예쁜 장미꽃을 사다 일일이 지역의 여성들에게 나누어주신 것이다.

덕분에 파랑새에서도 장미꽃을 받을 수 있었다.
 
파랑새에서는 스무 송이나 되는 장미꽃을 받았다.

여성의 날을 맞아 아이들이 어머니들께 축하 편지를 쓰고 함께 장미꽃을 전달해드렸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렸더니 흔쾌히 이를 허락해주신 탓이다.

아이들은 작은 선물을 드릴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좋아라 하며 각각 편지와 꽃을 들고 집으로 향했다.

다만 몇 아이가 "나는 엄마가 없는데 할머니한테 장미꼿을 드려도 되나요?"하고 되물어와 마음이 짠했을 뿐이다.
 
어쨌든 그렇게 몇 달 전부터 수회에 걸쳐 회의를 하고, 여성의 날을 기념하는 보랏빛 플랭카드가 지역 곳곳에 걸리고, 장미꽃이 일일이 배달되고, 구로 마을TV에 기념 영상이 방송되면서 여성의 날은 성황리에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그 모든 활동 뒤에는 여성 당사자들의 열정 어린 노력들이 있었고, 이를 묵묵히 함께 해준 고마운 남성 동지들의 노고가 곳곳에 배여 있다.

그리고 그 자리에 구로타임즈가 물론 함께였다.
 
생각해보면 구로는 특히 여성의 날을 할 만한 곳이다.

물론 우리나라 아니 세계 곳곳에 아직도 만연해있는 성적 불평등을 생각해보면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우리가 기억하고 노력하고자 하는 것이 전 지구적 일이란 점에는 물론 이의가 없다.

하지만 한국 근현대사에서 공순이란 이름으로 존재해왔던 '우리 언니, 우리 누나'들의 존재가 가진 의미를 생각해보면 그래도 우리는 특별히 더 이 날을 기념할만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우리 사회가 지나온 길을 더듬어보면 그 때만 혹은 우리 구로만이 특별히 성적 불평등이 심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불과 몇십 년 전의 일이지만 지금과 비교해보면 그 때는 여성을 차별하고 비하하는 일이 훨씬 더 노골적이고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던 때이므로 '구로공단 공순이'만 특별했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그렇다면 어째서 구로는 여성의 날을 더 기념할 만다고 계속 횡설수설의 말을 하는 것인가?

구로는 아니 구로공단은 우리 사회를 지금과 같은 후기 산업사회로 이끈 산실의 하나다.

국가와 사회의 기반을 이만큼 이루어낸 것에 대해 구로공단이 해왔던 역할이 있는 곳이다.
 
그 안에서 여성들은 노골적인 차별과 멸시의 성적 불평등을 견뎌내며 지금의 경제를 일구어냈고, 그로 인해 우리는 지금의 형식적 평등을 이만큼이라도 이루어낼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 딸이라고 구로공단의 공순이로 일을 보내고자 하는 부모님들은 계시지 않을 정도의 성적 평등과 가치를 지향하는 세상을 만들어내게 되었다.
 
하지만 구로공단 공순이들이 사라진 이 곳에 남아 여성의 날을 기념하는 우리들의 현실이 천국이 아닌 것은 사실이다.

이제는 미싱대 앞에 앉아 한 알의 타이밍으로 긴 밤을 지새는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의 핸드폰 속의 영원한 성적 노리개로 살아야 하는 것이 지금 여성의 날을 맞이하는 우리들의 고민이다. 

이제는 구사대의 무자비한 폭력에 떨고 있는 노동조합의 공순이들이 아니지만, 직장, 집, 결혼, 노후 그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보장해주지 않고 모든 것을 개인의 능력 탓으로 돌리며 스스로의 책임만을 요구하는 냉혹한 사회의 폭력에 숨죽이고 있어야 하는 것이 오늘날 여성의 날을 기념하는 우리의 현실이다. 

그래서 장미꽃을 받아든 손은 마구 떨려 온다. 

 

[편집자 주] 
세계여성의날인 3월8일을 맞아 구로지역준비위원회를 비롯한 지역주민들의 릴레이 기고  마지막편 다섯 번째 기고문과 성태숙시민기자의 글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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