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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이야기 130] 연애와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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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이야기 130] 연애와 정치
  • 성태숙시민기자
  • 승인 2016.04.08 18: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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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드라마를 보는 맛은 역시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보는 것이다. 당사자 두 사람만 모를 뿐이지 관객은 이미 두 사람의 운명을 뻔히 알고 있다. 다 알고 있는데, 극중에서 두 사람은 이런 저런 이유를 갖다 들이대며 감히 운명을 거부하려 든다. 주요하게는 금수저와 흙수저의 타고난 계급이 다르다는 것이고, 그게 아니면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이리저리 얽힌 철저히 원수 집안이란다. 조금 다른 변주곡도 있지만 뭐 대충 이런 식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너희 둘이 저항할 수 없는 사랑의 힘에 굴복하는 과정을 꼭 보고 싶단 말이다. 굴복은 뭐니뭐니해도 제 자신에게 하는 굴복을 보는 게 또 꿀맛이다.

저는 절대로 그런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단다. 이건 사랑이 아니라면서 뻔질나게 주변을 맴돌고, 무슨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까 혹여 다른 사람을 만나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말도 안되는 변명거리를 들이대며 계속 옆에서 알짱거린다. 아! 지랄 방정맞은 사랑이다.

그래도 언제나 십중팔구 먹히는 전술은 입을 꽉 다물고 있는 것이다. 그 말을 하면 세상에 큰 일이라도 날 것처럼 함구령이다. 온 몸은 그저 상대를 향하고 금방이라도 덥석 사람을 잡아끌어서 안아버리고 싶다는 표정이 역력한데 '입' 혼자 무슨 요상을 떠는 것인지 묵묵부답이다.

이미 사랑에 먼저 굴복한 상대는 안달이 나서 어떻게든 그 말을 들어보려고 온갖 수단을 다 부린다. '나는 이미 다 보여줬고, 내가 보기엔 너도 분명하니 이제 네 마지막 말만 확인하면 그만이다. 그러니 제발 이야기해라, 사랑한다고 말이다. 어서....'

상대방만 죽겠는 것이 아니다. 나도 환장을 하겠다. 어차피 시간 끌어봤자 별 볼 일 없다. 괜히 그러다 오해라도 생겨서 헤어진다 어쩐다 하면 너희만 힘든 게 아니다. 그 동안 달달한 맛에 만사 제치고 드라마에 몰입했던 나도 너무 김빠진다. 지금은 네가 잘 견딜 수 있을 것 같지? 내가 본 드라마에서 한 명이라도 멀쩡히 잘 견뎠으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그러니 괜히 드라마 분량 끌지 말고 빨리 말해라 어서!.

하지만 이렇게 응원을 하면서도 그것만이 내 마음의 전부는 아니다. 그 말을 차마 못하는 그 사람이 좋다. 진실하고자 용을 쓰는 그 마음이 어여쁘다. 그 훌떡훌떡 말끝마다 사랑을 걸고 넘어지는 그런 사람보다는 백 번 낫다. 물론 현실에서 보면 실제는 어떨까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진실한 사람 쪽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연애 이야기를 한참 한 것은 선거에 나선 사람들 때문이다. 선거란 모름지기 공약을 들고 나오는 자리인데 그런 약속을 하는 사람들이 좀 그렇게 진실 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 때문이다.

차마 그 말을 하기 쉽지 않을 정도로 우리 사회는 이미 충분히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여러 가지 사정들은 좋지 않다. 이것저것을 고려한다면 선뜻 무엇을 어떻게 해보겠다는 말이 쉽게 나오진 않을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도 모두들 척척 잘도 약속을 한다. 그 아리송한 약속을 들고 질기게도 구애를 해온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몰라도 너무 우리들을 사랑하고 우리 고장을 사랑해서 그렇단다.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게 얼른 우리도 자기를 사랑한다고 말해 달란다. 나만 이야기하면 끝이란다.

연애와 정치의 닮은 점은 이렇게 구애를 한다는 것도 있지만, 또 다른 닮은 점은 일단 찍고 나면 끝난다는 점도 닮았다.

그렇지만 그렇게 서로 사랑한 사람들이 오랫동안 정말 행복하게 살았는지는 알 수 없다. 정치의 미래가 얼마나 불투명한지는 이미 연애 드라마가 모든 것을 밝힌 대로다.

그러나 세상살이는 절대 드라마가 아니다. 드라마야 일장춘몽이지만 우리네 삶이야 어디 그런가 말이다. 그러니 유권자는 똑똑해야 한다. 우리가 드라마를 찍는 게 아니란 걸 분명히 알고 나서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도 별로 마음이 가는 사람이 없는 것은 참 고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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