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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씨앗] 새까만 감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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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씨앗] 새까만 감귤
  • 김근희 상임대표(식생활교육서울네트워크)
  • 승인 2020.12.11 15: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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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친환경 농산물은 때때로 못생기고 때깔이 좋지 않아도 감수할 자세가 되어 있어야 계속 먹을 수 있다. 

며칠 전 온라인으로 주문한 무농약 제주 감귤이 왔다.

전체적으로 거무티티한 게, 귤 표면에 바늘 끝만 한 점이 전체를 뒤덮었다.

좀 덜한 것도 있고 어떤 것은 정도가 심해서 귤색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필자가 식구들이 듣는데서 한 마디 했다.

'이번 것은 좀 심하긴 하다. 무농약 귤을 처음 보는 사람이 보면 기절초풍 하겠다. 유기농산물을 오래 본 사람들이야 그러려니 하고 먹지만, 처음엔 감당하기 힘들지.' 

아니나 다를까, 무농약 귤을 처음 주문해서 택배로 받은 사람에게서 판매자에게 전화가 왔단다.

'귤이 썩었다.'고.

유기농소비자 경력이 긴 판매자가 '그건 썩은 것이 아니라, 농약을 치지 않고 생산하고, 왁스 등 후처리를 하지 않은......' 등을 설명하고 '썩었으면 당연히 반품해 드릴 것이니 걱정하지 마시고, 우선 까서 드셔보시고 문제가 있으면 다시 전화해 달라.'고 했는데, 다시 연락이 없었다.

싱싱함과 맛이 모양을 감수하게 했나 싶다. 

필자가 처음 '저농약' 사과를 접했을 때 신세계를 만난 것 같았던 기억이 난다.

늘 깎아주는 사과만 먹던 아이에게 '안 깎아도 되니까 빡빡 씻어서 먹어라.' 했는데, 아이가 다 먹었다고 내 놓은 게 3g도 안 되는 것 같았다. 

아주 가운데 부분과 꼭지와 밑둥의 끝부분만 남긴 거다.

웬일인가 싶어 필자도 하나를 꺼내 한 입 베어 물었는데 '어머! 어머! 무슨 사과가 이러냐? 세상에 어쩌면' 감탄사가 흔하지 않은 필자가 상투적으로 들릴만한 찬사가 입에서 절로 나왔다.

음식은 싱싱할 때 먹어야 한다며 하루를 넘기기도 아까워서, 결국 아이에게 길 건너 지인의 집까지 배달을 시켰었다. 

친환경 유기자제를 연구하고 생산하는 단체의 대표님의 강의를 들었을 때다.

'유기농'을 한 마디로 말하면 뭐라고 하시겠어요? 하는 청중의 질문에 '맛'이라고 대답했었다.

건강에 좋고 환경에 좋다는 건 그리 와 닿지 않는다.

확실한 차이는 '맛'이란다.

필자는 사과를 통해 경험한 터여서 금방 수긍했었다. 

친환경 농산물이 처음부터 다 맛있는 것은 아니다.

유기농산물은 소비자가 원한다고, 생산자가 마음먹었다고 내일부터 뚝딱 생산해 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외국에는 없고 한국에서도 이제는 사라진 인증마크 '저농약 농산물' 수준의 것부터 시작해서 서서히 무농약 단계를 밟아 농약과 화학비료를 줄여가며 땅을 관리해 온 결과로 유기농이 탄생한다. 

20년쯤 전 저농약 과일도 귀하던 때였는데, 유기농 배를 생산해서 친환경 물품을 판매하는 단체에 가지고 온 생산자가 있었다.

그 단체의 선택은 'NO' 였다.

모양이 볼품없고 맛도 그리 좋지 않은데 소출이 적으니 가격까지 많이 비쌌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이 감수할 수 있는 폭을 넘어서다. 

지금은 수년, 수십 년 간의 충분한 토양관리로 맛도 크기도 때깔도 가격도 많이 좋아졌지만, 간혹 맛의 모험을 요구하는 무농약 사과도 있고, 겉모습이 불편한 유기농 감귤이 있다. 

볼품없는 과일을 소비자가 마다 한다면 생산자는 포기할 수밖에 없다.

생산자의 노고와 땅과 비와 햇볕과 바람 뿐 아니라 다소 불편한 것도 감수하는 소비자들이 있어야 생산을 이어가고 발전할 수 있다.

함께 한 소비자들 모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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