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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사이로] 떠나가야 하는 '우리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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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사이로] 떠나가야 하는 '우리 아이들'
  • 성태숙 시민기자 (구로파랑새나눔터공부방 지역아동센터장)
  • 승인 2020.11.20 15: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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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태숙 시민기자는 구로2동에 소재한 구로파랑새나눔터공부방 지역아동센터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성태숙 시민기자는 구로2동에 소재한 구로파랑새나눔터공부방 지역아동센터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이 좋다.

작은 복도식 아파트 22층 맨 끝에 위치한 곳이 내가 살고 있는 곳이다.

아들아이 둘을 길러낸 곳도 바로 이 집이었으니, 초등학교를 입학하기 전에 구로동으로 이사 와서 성장기를 모두 보낸 친정집을 제하고는 내가 제일 오랜 산 집이다.

친정집과 지금의 이 집 중 어디에 더 오래 살았는지를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두 채의 집에서 거의 한 세월을 살았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친정집은 걸어서 불과 10분 거리다.

늘 부족함이 많고 어설픈 딸내미가 걱정이 되셔서 친정어머니는 당신 가까이 내 거처를 마련해주셨다.

친정 부모님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이런 거처를 마련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또 그럴 것을 너무 잘 아시는 터라 부모님은 나를 멀리 떠나보내지 못하셨다.

그래서 가끔은 부모님과 뚝 떨어져 저 멀리 어디서 사는 꿈을 꾸어보곤 한다.

만약 그랬다면 내가 더 야무진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장담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도 이런 집이라도 있어서 나는 살아가는 데 큰 덕을 보았다.

덩치 큰 아들 아이 둘과 내가 누우면 집이 꽉 찬다고 느껴질 만큼 넓지 않은 집이지만, 그래도 우리 집이라고 부를 만한 곳이 있어서 세상이 크게 두렵지 않았다.

먹는 것이야 지금도 너무 많이 먹어 탈이고, 입을 것은 몇 벌이면 족하다.

분수에 맞지 않는 욕심만 부리지 않는다면, 또 크게 아프지만 않으면 나는 소박하게 이 작은 공간 안에 머물다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공간들이 우리들 모두에게 하나씩 주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특히 이 세상에서 구로동보다 더 좋은 곳은 없다고 말하는 우리 파랑새 아이들 모두가 이런 작은 안식처라도 가질 수 있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을 것 같다.

며칠 전 한 아이가 이별을 알려왔다.

파랑새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집을 세 얻어 살고 있는데, 인천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날 밤 어머님도 전화를 하셔서, 집값이 너무 올라 결국은 구로동을 떠나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다고 그간 감사했다는 인사를 해주셨다.

지난 코로나 19 사태로 결국 부모님이 직장을 잃게 되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들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집까지 옮겨간다는 말씀을 하시니 착잡하기만 하다.

아이도 섭섭함이 가득한 눈치지만, 의젓하게 내색 한 번을 하지 않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듯 하니 그 모습이 더 안타까울 뿐이다.

다른 아이 하나도 지금 있는 집에서 집세를 올려달라고 해서 집을 찾아보았으나, 마땅한 집이 없어서 한참 거리가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고 한다.

버스를 타도 서너 정거장은 되는 거리인 만큼 이사 간 아이를 계속 파랑새에 다니라고 하는 게 맞을까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난 해 도로교통법안 등의 개정으로 차량 등을 이용한 아동들의 등학교 지원은 쉽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차량을 도색하고, 알림이 벨 등을 설치하고, 또 등하원 지도시마다 운전기사 외에 교사 1명이 별도로 동승하여 아동들의 안전을 챙겨야 한다.

둘 또는 세 명밖에 안 되는 종사자들이 일하는 지역아동센터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매일 버스라도 타고 다니겠다고 호언장담이다.

한편에서는 고마우면서도 한편에서는 가능할까 갸웃거려지는 것이 사실이다.

어쩌면 또 한 번의 이별을 준비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렇게 집값이 계속 올라서 정말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이 함께 살 수 있는 동네가 될 수 없다면 이런 곳에서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 일일까 고민이 되기 시작한다.

집에만 머물라고 하기 전에 아이들이 어떤 집에서 살고 있나 그런 거라도 한 번 살펴보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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