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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사이로] 콕, 확실히 찍어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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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사이로] 콕, 확실히 찍어주겠다
  • 성태숙 시민기자 (구로파랑새나눔터공부방 지역아동센터장)
  • 승인 2020.03.28 15: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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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찍을 거다. 콕콕 찍어주겠다. 물론 파랑색을 찍을지, 빨강색을 찍어줄 건지 그도 저도 아니면 주황색이나 혹은 다른 색을 찍을지 그건 아직 비밀이다. 하지만 확실히 찍어주겠다. 콕.

세상만사가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확산에 귀추가 주목되어 있으니 사실 무슨 색을 찍을까 따위에 마음을 쓰는 일은 어쩜 속 편한 소리가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마음 가는 색깔을 찍는 일에 너무도 마음을 빼앗겨 잠시 코로나에 대한 걱정마저 물리치고 만다.
 

파랑새 아이들 중 몇몇은 내가 어떻게 찍을지 유독 관심을 보이기도 한다. 색깔을 잘 선택해서 콕 찍고 나면 "와, 멋지다!" 이렇게 탄성도 해줄 것이다. 그러니 콕콕 잘 찍어야한다.
 

혹시 여기까지 읽으며 '선거 이야기구나' 하고 섣부른 판단을 하신 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지금 내가 콕콕 찍고 있는 것은 매니큐어다. 갖가지 색깔의 매니큐어를 잠시 짬날 때마다 초벌구이를 한 토분 화병에 찍고 있다.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잠시 해보겠다.
 

언젠지 모르겠지만 길에서 황토색 화병 두 개를 주웠다. 모양새는 그럴 듯하지만 누군가 제대로 끝맺음을 하지 않고 초벌구이만 한 채 가지고 있다 결국은 마음이 흐지부지해져 버린 모양이다. 화병이나 물을 담을 수 없는 것인데 그런 줄은 미처 몰랐다. 봄기운을 받아 뿌리를 길게 내리로 있는 허브 한 줄기를 위해 토분 화병에 물을 담았다 낭패를 보았다. 단단해 보이던 겉과 달리 토분은 숨 쉬는 항아리마냥 작은 구멍들이 있는 모양인지 밖으로 검버섯이 피어오르듯 얼룩이 번져 올라온 것이다. 낭패스러웠다.
 

결국 꾀를 낸 것이 미처 쓰지 않고 가지고 있던 여러 색의 매니큐어가 있어 그것을 예쁘게 띠 마냥 둘러주기로 한 것이다. 연두와 파랑 그리고 초록을 섞어 놓으니 마치 중남미 어느 나라에서 사온 기념품마냥 그럴싸해 보인다. 거기에 언젠가 천으로 만들어둔 선인장을 꽂고 작고 하얀 돌멩이로 가장자리를 잘 눌러주니 그럴듯한 봄맞이 화병이 되었다.
 

그것이 첫 시작이었다. 하나를 그리 만들고 나니 용솟음치는 영감을 가눌 길 없다. 하나 남은 다른 화병은 스페인의 유명한 건축가인 안토니오 가우디의 흉내를 내어 갖가지 색깔의 작은 점들을 콕콕 찍어 완성하기로 한 것이다. 처음에 화병의 목둘레를 찍을 때는 그저 그랬다. 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계속 찍어가자 마침내 그럴싸한 모양새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빨강과 파강, 주황과 노랑, 초록과 분홍이 절묘하게 어울리며 자태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하루 종일 붙들고 앉아서 색깔만 찍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점심을 먹고 잠시, 공부방 식구들이 모두 돌아가고 난 뒤 남은 잡일을 하기 전에 잠시 이렇게만 짬을 내어 매일매일 조금씩만 행복을 맛보기로 했다.
 

화병의 목둘레를 다 돌아 찍고 나니 아이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우루루 몰려들어 예쁘다 한마디씩 하고 저희들도 찍어보고 싶다 간청을 해온다. 왜 안되겠는가? 선거도 18세로 하향되어 국민투표도 하는 마당에 매니큐어쯤 화병에 찍어보는 일이야 뭐 대수라 안되겠는가 말이다. 하지만 가만 보니 화병은 6학년 언니 두명의 독차지다. 그보다 작은 아이들은 겨우겨우 몇 번 찍어보고 마는 것 같다.
 

봄이 완연해지기 전에 화병에는 갖가지 점들이 찍힐 것이다. 그때쯤이면 코로나 19도 물러가 있길 소망해본다. 아이들은 더 이상 실내에 머물며 선생님이 의자 구석에 앉아 뭘 저리 하고 있나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될 것이다. 화병에 찍힌 인공의 매니큐어가 자아내는 빛깔보다 천만배는 더 밝고 화사한 봄볕 속에서 마음껏 자라날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지금 순간을 의연히 잘 버틴 우리 모두가 자랑스러울 것이다. 그러니 힘내자! 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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