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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 사이로 3] 코로나와 5대 영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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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 사이로 3] 코로나와 5대 영양소
  • 성태숙 시민기자 (구로파랑새나눔터공부방 지역아동센터장)
  • 승인 2020.03.06 14: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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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좀체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걱정스럽다. 감염병이 알려졌던 초기만 하더라도 구로구는 확진자가 없어 내심 안심을 하고 있었는데, 결국은 지역 감염의 확산 경로를 따라 구로구도 더 이상 청정지역으로 머물 수 없게 되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지역아동센터도 벌써 휴원을 한 지 며칠 되었다. 처음에 개봉동에 확진자가 나와서 지역의 이용시설이 휴원을 하게 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만 하더라도 실감이 되지 않았던 일이다. 실은 어처구니없게도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하고 조금은 상황을 낙관적으로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일이 벌어지고 보니 생각보다 공포는 빠르게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특히 상황을 심각하게 생각하시는 부모님들은 당장 예민하게 아이들이 안전하게 센터를 다닐 수 있는지를 확인하고 싶어 하셨다.

하지만 눈에도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는 심정이랄까....코로나 바이러스로부터 아이들을 100%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아무리 고심을 해보아도 좀체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이런 미온적 태도에 실망하시거나 너무도 상황이 우려스러운 부모님들께서는 아이들을 밖에 내보지 않는 현명하고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기에 이르셨다.

그 점은 센터에서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택배 기사분이나 다른 외부 손님들의 출입을 최대한 막는 데서 나아가 가능하면 아이들이나 교사들은 가능한 센터 내에서만 머물 수 있도록 온갖 방도를 다 쥐어짜내고 있다.

잠시를 가만있지 못하고 심심해하며 놀이터에라도 놀러가고 싶다는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며 하루를 보내는 일은 장히 쉬운 일은 아니다. 파랑새에서는 벌써 딸기 탕후루를 2번 해 먹었고, 아이들이 하고 싶어 하는 미장원 놀이도 이틀 연속으로 벌였다.

점점 더 역할에 심취해가는 아이를 위해 나는 기꺼이 내 머리카락을 내놓았다. 잘라도 좋다는 허락을 받자마자 흥분을 감추지 못해 살짝 떨리는 가위질에 머리는 무참히 잘려 나갔다.

비누도 이틀을 만들었고, 달고나 까지 해먹었다. 급식 조리사 선생님께서 더 이상 오시지 않아 아이들을 돌보다 말고 뛰어가 밥을 하고, 설거지 하느라 정신없이 바쁜 하루하루가 지나고 있다. 열심히 만들어 먹였지만, 이건 맵고, 저건 느끼하고, 요건 원래 별로 좋아하는 게 아니란다. 연신 "미안해, 미안해....다음에는 더 잘 만들어볼게..." 진심을 다한 약속이지만 믿어주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식당에 음식을 먹으러 가는 일조차 큰 용기가 필요하니 조금은 더 참아주고, 더 노력을 해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인내심을 갖고 의젓하게 잘 참던 아이들도 한 번씩 답답하고 힘든 순간이 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누군가 먼저 "맛있는 것 먹고 싶다. 선생님, 우리 외식하면 안돼요?"라고 조르기 시작하자 여기저기서 이구동성으로 외식이 하고 싶단다. 그러니까 센터에서 먹는 밥은 집밥이고, 식당에서 사먹는 밥은 외식인데 그런 외식이 하고 싶다는 것이다.

이 시국에 아이들을 데리고 외부에 음식을 먹으러 가는 것은 아무래도 쉽지 않은 일이어서 "그럼 구청에 가서 허락을 받아보자"고 했더니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선뜻 그러마고 한다. 이것도 나쁘지 않은 세상 공부가 되겠다 싶어 그럼 같이 가보자고 해서 함께 구청의 담당공무원을 만나러 갔다. 처음의 호기는 어디 가고 주저주저하며 겨우 의견을 전달하였다.

하지만 아이들의 하는 냥을 귀엽게 보신 과장님과 담당 공무원이 "5대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있는 식품으로 식사를 한다는 조건이면 괜찮다"는 말에 아이들은 의기양양해서 문을 나섰다. 하지만 그 5대 영양소가 무엇인지는 정작 모르는 눈치다.

그래도 5대 영양소가 코로나로 지친 아이들의 가슴에 작은 불길을 지핀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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