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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희망읽기 75] 공짜뉴스의 후유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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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희망읽기 75] 공짜뉴스의 후유증
  • 장호순 교수(순천향대)
  • 승인 2015.11.20 16: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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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속담이 있다. 그만큼 사람들은 공짜를 좋아한다. 물론 자본주의 세상에 공짜란 없다. 공짜를 즐기는 나를 대신해 누군가 비용을 지불하기 마련이다. 지금은 공짜지만 다음 어느 때인가 그 댓가를 치러야 한다. 그래도 먼 훗날 치를 추가비용을 걱정해 지금의 공짜를 외면할 사람들은 많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공짜로 즐기는 상품 중 하나가 뉴스이다. 그런데 뉴스는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만드는 것이다. 식당에서 판매하는 음식처럼, 뉴스도 재료를 구하고 정갈하게 손질해서 손님들에게 제공된다. 그래서 재료비도 들어가고 인건비도 들어간다. 그러나 뉴스를 이용하는 독자들은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
 
독자들이 이용하는 공짜뉴스의 비용은 광고주가 지불한다. 언론사들은 뉴스의 앞뒤나 주변에 붙이는 광고수익으로 먹고 산다. 식당으로 치자면 국밥은 공짜로 손님에게 주고, 식당 안에 여기저기 붙어 있는 광고 포스터로 수익을 올리는 것이다. 예전에는 그래도 독자들이 원가의 절반정도는 부담했는데, 디지털 시대로 가면서 공짜뉴스가 대세가 되었다. 대신 뉴스에 붙어 다니는 광고가 크게 늘어났다. 그래서 뉴스기사를 클릭하면 여기저기 수많은 광고가 동시에 등장한다.
 
그러다 보니 언론의 흥망성쇠를 광고주가 결정하는 세상이 되었다. 언론사들은 광고주의 직간접 압력이나 영향력으로부터 더욱 구속당할 수 밖에 없고, 이로 인해 독자들의 신뢰는 더욱 낮아지고, 그래서 언론은 더욱 광고주에 의존해야 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한 사례가 <한겨레>의 국정교과서 게재를 둘러싼 최근 논란이다. <한겨레>는 지난 10월 19일자 1면 하단에 "올바른 역사관 확립을 위한 교과서를 만들겠습니다"라는 문구의 정부광고를 게재했다. 언론분야 전문신문인 <미디어오늘>의 보도에 따르면, 전국지와 경제지 등 총 22개 신문이 동일한 국정교과서 홍보 광고를 게재했다. 각 언론사 당 약 2000만-3000만원의 광고비가 집행되었고, 총 5억원의 정부 예산이 사용되었다.
 
<한겨레>는 국정교과서 홍보광고는 기사와 광고는 별개의 것이라는 원칙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진보성향을 가진 독자와 네티즌들의 공분을 샀다. 특히 같은 진보성향의 <경향신문>은 국정교과서 광고를 게재하지 않았기에 더욱 그랬다. <한겨레> 내부에서도 노조를 중심으로 논조에 배치되는 광고에 대한 비판의견이 제기되었다. <경향신문>은 논조와 배치되는 정부광고를 집행하는 것을 반대한 편집국의 의견이 수용되었다고 한다.
 
사실 <한겨레>가 국정교과서 광고를 게재하면 닥치게 될 여론반발을 예상하지 못했을 리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고를 게재한 것은 그만큼 <한겨레>의 경영이 어렵다는 징표이다. (물론 경향신문도 경영이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한겨레>는 창간주주 2만 7천명의 성금을 기반으로 출발했고, 그러한 기대에 부응하며 한국의 대표적 진보적 신문이고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신문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이대로 가다간 머지않아 문을 닫아야할 처지에 놓여있다. 진보성향의 독자마저도 공짜뉴스를 제공하는 사이트로 옮겨간 탓이다.
 
공짜뉴스 시대에 진보언론이 살아남기는 매우 어렵다. 광고수익을 올리기 위해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공짜뉴스를 제공하는 언론은 결코 진보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 진보언론을 이용하는 지식인과 정치인들은 많지만, 진보언론의 비용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많지 않다. 현재 진보진영이 지리멸렬한 이유가 진보언론의 부실과 부재 탓이라는 점을 인지하고 대안을 제시하려는 사람들도 드물다. 진보언론이 제대로 기능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보수정권의 독주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반성하는 진보적 정치인들도 찾아보기 힘들다.

국내 언론사 중 국정교과서 반대여론을 <한겨레> 만큼 적극 대변하는 신문도 없다. 그렇지만 <한겨레>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국정교과서 홍보광고를 게재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공짜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디지털 시대의 후유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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