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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이야기 111]인간의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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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이야기 111]인간의 몸
  • 성태숙 시민기자
  • 승인 2015.11.20 16: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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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검진을 받았다. 미룰 수만 있다면 너무 미루고 싶은 일이었지만 해치우듯이 받아버렸다. 지역아동센터 모두가 받고 있는 구청의 지도점검 속에 연 1회 종사자들의 건강검진이 필수사항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내 건강을 염려하시는 어머님의 성화 때문이다.

검진을 받은 곳은 동네 근처 작은 병원이다. 어느 병원에서 검진을 받을 건지 시시콜콜 궁금한 것이 많으신 어머님께서는 병원 이름을 듣자마자 영 미덥지 못한 눈치를 보이시더니, 누구누구네도 그 병원에서 검진을 받았는데 결국 암이 있는 것도 못 찾아내서 일을 치르고야 말았다며 못마땅한 눈치셨다. 병원을 바꿔라 성화를 하실 것 같은 눈치가 역력하셔서 이젠 늦었노라 단호히 말씀을 드리고 말을 끊었다.

늦게까지 일을 하면 무의식중에 뭘 자꾸 먹게 된다. 어려서 어머님 젖이 시원치 않다고 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뭘 자꾸 입에 달고 살려 한다. 검진을 받아야 할 전날 밤에도 늦게까지 일을 하다 나도 모르게 뭘 주워 먹지는 않을지 그게 가장 염려스러웠다.

그래도 어떻게 정신을 차려 결국 검사를 받을 순 있었는데, 남들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유방암검사와 자궁암 검사 그리고 내시경 검사 등등이 너무 괴로웠다. 두 눈을 멀쩡히 뜨고 당하는 내시경 검사가 차라리 낫다 싶을 정도로 특히 앞의 두 검사는 정말 죽을 맛이었다.

아무리 지고지순한 척을 하고, 잘난 척을 하고 살아도 한 꺼풀만 벗겨 놓으면 인간은 아무런 맥을 못 춘다. 마치 고깃간 저울 위에 고기를 올려놓듯 엑스레이 촬영대 위에 가슴을 올려놓으며 나는 육신에서 정신을 분리시켜 가까스로 그 순간의 모멸감을 참아야 했다.

자궁암 검사는 입에 올리기조차 싫다. 검사대 위에 올라가 다리를 벌리는 순간 정말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차라리 그냥 죽고 싶다. 참지 못할 정도가 되면 진통제나 좀 맞다가 죽을 때가 되면 그냥 죽겠다. 그러니 이런 검사는 받지 않도록 해달라고 되지도 않을 애걸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육신만으로 이루어진 나는 전혀 의연하지 못했다.

이제 몸은 일종의 계급이 되었다. 나이가 들어서도 잘 관리된 미끈한 몸들이 가능한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젊은 몸, 잘 관리된 몸, 날씬한 몸은 높은 계급이다. 뚱뚱하고 근육이란 찾아볼 수도 없는 지방질 덩어리의 나처럼 푹 퍼진 몸은 형편없는 인생의 상징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 인생은 불행하다. 그나마 지금보다는 훨씬 육체적 가능성이 컸던 젊은 시절에는 주변이 온통 몸을 혐오하고 정신을 추앙하는 분위기로 가득했다. 그 때는 입에서 나오는 말마다 부끄러워 살 수가 없었는데, 이제 이만큼 나이가 들고 보니 세상이 또 온통 몸이 우선이고 정신은 아랑곳이 없으니 재수가 없으면 참 이렇게도 없구나 싶은 것이다.

그래도 방법은 없는 것이니 사는 데까진 서로 잘 지내보자고 '몸'하고도 화해를 하고 지내고 있지만 그래도 이건 말뿐이다. 언젠가부터 왼쪽 가슴이 뻐근하게 혹은 뱃속이 타들어가게 아프기 시작하면, 모든 생각은 아픔으로 집중되고 마음속에는 고통에 대한 두려움만이 가득하게 된다. 아픔과 고통 그리고 그로 인한 두려움은 분명 참기 힘든 것이었다.

그러니 인간은 다른 인간의 고통이나 두려움을 이용해서는 안되는 것인데 말이다. 그러나 지난 14일 광화문에 모인 사람들을 해산하려 경찰들이 쏘아댄 그 물대포는 분명히 시민들의 고통과 두려움을 정조준하고 있었다. 노부(老父)가 쓰러졌는데도 물대포는 멈추지 않았다. 어쩌려는 것이었을까? 그를 멀리 날려 보내기라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 권력에 맞서 살아간다는 사실은 너무 두렵다. 내 약하고 늙은 몸은 쉽사리 겁먹고 공포에 질리며 조금이라도 아픔을 견딜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 그런 몸뚱아리로 이 야만의 시대를 살아가려니 참 답이 없다. 그래서 또 두려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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