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4-19 09:21 (금)
[구로동이야기 72]구로동 친구들
상태바
[구로동이야기 72]구로동 친구들
  • 성태숙 시민기자
  • 승인 2015.10.10 15: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상에나 새벽 2시가 넘어서 집에 들어왔다.

술집에서 친구들과 노니닥거리다 그리 된 것이니 가히 역사적인 일이다. 명절연휴 끝에 '우리 한 번 얼굴이나 볼까?'하고 구로남국민학교와 영서중학교 동창생인 한 친구와 의논을 했던 차에 벌어진 일이다.

이런저런 도움을 많이 받았던 친구라 감사한 마음을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어서 그러자고 했던 일이다. 그러면서도 분명 연휴 끝에 가면 쉬는 참에 하겠다고 잔뜩 미루어두었던 일들은 손도 못 대서 약속한 걸 후회할 게 뻔하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아이들하고 똑같이 '오랜만에 친구들 만나서 놀고 싶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어서 벌어졌던 일이다.

둘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셋이서 저녁을 먹고 다섯이 되어 술자리를 갖게 된 것이 새벽까지 이어져 다른 친구의 딸내미까지 우여곡절 끝에 합세해 여섯으로 결국 자리가 파했다.

밍기적거리기도 했고 이런저런 소리도 많았지만 한 마디로 어땠냐면 너무 좋았다. 뭣을 했냐고 묻는다면 딱히 한 건 없다. 친구들이 파랑새를 열심히 하라고 격려를 해준 것, 그리고 아들의 입장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해 준 것과 다른 친구의 딸내미 이야기와 또 다른 친구의 일 이야기를 들은 것 정도가 주요한 내용들이다.

술을 전혀 못 마시는 내가 내내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자리에 앉아서 꼬박 듣고 있었던 이야기니 틀림은 없다. 그래도 너무 좋았다. 왜 애나 어른이나 친구만 만나면 시간가는 줄 모르는지가 충분히 이해될 만큼 너무 좋았다.

여자 넷에 남자가 하나여서 혹시 어색하면 어쩔까 싶었던 걱정이 아무 필요가 없을 만큼 좋았다. 그래서 애들이 친구랑 아무 것도 안했다는 이야기가 이해될 만큼 그렇게 아무 것도 안하고 그냥 좋았다. 친구를 만나서 늦게까지 막 웃으면서 그럴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하지만 나는 분명 폐가 되는 사람이었다. 거기서고 여기서고 어디에서고 늘 그렇다. 셋이 만나 먹었던 점심도, 다섯이 만나서 즐거웠던 술자리도 한 친구가 모두 계산을 했다. 어릴 적도 그렇고 지금도 훨씬 사정이 좋은 것도 아닌 그 친구가 그렇게 계산을 하게 두었다.

내 몫을 하게 두었으면 내 몫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지는 않았다. 실은 그러려고 준비도 해갔다. 하지만 너는 그냥 두어라 하는 말들에 눈치를 보면서 남들이 계산을 하게 두는 못된 습성이 어느 틈에 붙어버렸다. 물론 그렇게 호기롭게 전부를 계산할 처지 정도는 못되지만 그래도 내 몫 정도는 낼 마음도 있었는데 그걸 그냥 눈을 감았던 것이다.

뭐든지 아끼고 더 아끼지 않으면 살 수 없을 줄 알고 늘 바들바들 떨면서 살아온 게 화근이라면 화근이다. 어느 새 몹쓸 인색함이 너무 많이 덕지덕지 붙어서 이렇게 추한 꼴이 되었다. 남한테 도움 받고 사는데 너무 익숙하고 폐를 끼치는 인간이 된 것이다. 많은 자리에서 선배나 어른 노릇을 해야 하는데 선배로 보아서도 어른으로 보아서도 쪼잔하고 인색하기가 그지없다. 남이 이런 꼴을 보면 참 어울리기 싫을 것 같다.

분수에 맞게 살자고 생각했었는데 친구들을 보니 생각이 많아진다. 어릴 적에 함께 자랐던 친구들이다. 구로동에서 힘든 시간들을 보냈고 그래서 구로동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은 마치 저를 위한 일처럼 기뻐하는 친구들이다. 그런 친구들 앞에서도 그 짓에서 못 벗어나는 스스로가 실은 부끄럽다. 마시지도 않은 술에 머리가 지끈거리듯 생각에 어깨가 쑤셔온다.

남에게 얻어먹는 것도 그렇지만 제 분수를 모르는 일도 좀 그렇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어른 노릇을 하는 친구들을 보니 스스로가 자꾸 뒤돌아봐진다. 나는 저럴 수 있을까 싶은 것이다. 나는 저이들처럼 내 어릴 적 아픔을 달래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저렇게 적극적으로 나서서 감사를 표현하고 작은 마음이라도 함께 나누려고 했을까? 아마도 십 중 팔구는 저이가 저리 하고 있으니 감사하다고 여기고 그냥 모른 척 하자고 역시 인색한 마음을 품었을 것이 틀림없다. 참 사람 됨됨이가 걱정스럽다. 친구들 만나고 온 좋은 날에도 내 됨됨이 걱정이 즐거운 마음 한 자락에도 뭣처럼 대롱대롱 달려있다. 그래도 놀아서 좋았다. 참 좋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