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3-28 10:19 (목)
[지역희망읽기 65] 디지털 선진국, 전염병 후진국
상태바
[지역희망읽기 65] 디지털 선진국, 전염병 후진국
  • 장호순 교수(순천향대 )
  • 승인 2015.06.08 17: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6월 2일자 미국의 <뉴욕 타임즈> 신문에는 "실리콘 밸리가 한국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What Silicon Valley Can Learn From Seoul)"이라는 제목의 특집 기사가 실렸다.

기사의 핵심은 미국의 디지털 산업이 한국에 비해 크게 뒤쳐져 있다는 것이다. 전 세계 디지털 산업을 앞장서 이끌어 가는 미국이지만, 미국보다 4-5년 앞서 가고 있는 한국으로부터 배울게 많다는 것이 기사의 핵심 내용이었다.

한국은 미국에 비해 디지털 전송속도가 빠르고 이용 비용도 저렴해서, 미국 실리콘 밸리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디지털 환경이 구축되어 잘 작동하고 있다고 <뉴욕 타임즈> 기자는 전했다.

<카카오톡>과 같은 서비스를 예로 들면서, SNS는 물론이고 소비생활과 금융거래에서 디지털 서비스 이용이 일반화 되어 있는 한국을 부러워했다.

배달문화에 익숙한 한국인들이 <배달민족>이나 <쿠팡>과 같은 서비스를 편리하게 이용하고, 스마트폰으로 간단하게 그 비용을 결제하는 모습이, 아직 미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비록 산업적 측면에서는 그 규모가 미국에 비해 매우 작지만, 한국에서 통하면 미국에서도 통할 것이라는 전제 하에, 한국의 디지털 산업에 투자하는 미국자본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디지털 창업을 지원하는 미국 투자자본으로 <500 김치 (500 Kimchi)>라는 사모펀드가 생겼는데, 500개의 신규 디지털 창업자들을 지원하는 것이 목표이다.

미국의 검색엔진인 구글도 아시아 최초의 캠퍼스를 서울 강남지역에 개설했다고 <뉴욕 타임즈>는 소개했다.

미국 실리콘 밸리가 배워야 할 정도로 한국 사회의 디지털 네트워크는 잘 작동하고 있지만, 위기 관리 능력이나 의사소통 수준은 에볼라 바이러스로 고통받는 아프리카 후진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중동호흡기 증후군 즉 메르스(MERS) 바이러스 확산에 대응하는 정부 지도자들의 태도를 보면 확연하다.

국가적 위기를 당면한 상황에서 디지털 첨단 기술을 활용해 국민들에게 신속하게 알리고 대처하기 보다는, 감염 병원과 감염 지역을 은폐함으로써 국민들의 불안을 증폭시켰다.

정부가 숨긴 정보는 국민들 사이 디지털 네트워크를 통해 빠르게 전파되었고, 진실과 오류가 뒤섞인 정보는 국민들로 하여금 합리적 판단을 하기 어렵게 했다.

결국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고, 국민의 불안과 불편은 물론이고 경제적 손실과 고통도 엄청나게 불어났다.

가뜩이나 경기침체와 실업난으로 시름하는 국민들에게 메르스 사태를 통해 보여준 정부 지도자들의 행태는 "기술"보다 "사람"이 더 중요함을 여실히 입증했다. 아무리 뛰어난 최첨단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라 하더라도, 그 나라의 지도자들이 정직하고 유능하지 못하다면 그러한 기술은 무용지물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무선네트워크를 갖추었고, 가장 높은 스마트폰 보급률을 자랑하는 디지털 선진국이지만, 한국의 위기관리 능력은 그 어느 후진국만도 못한 실정이다.

최근의 메르스 사태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지도자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진실만큼 효과적인 대책은 없고, 거짓과 은폐만큼 부실한 대책이 없다는 점이다. 
유언비어는 엄단한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밝히면 사라지게 마련이다.

지난 밤 제자로부터 카톡 문자가 날라왔다. 유학생활을 마치고 베이징으로 돌아간 중국인 제자가 메르스 때문에 걱정된다며 안부를 물어왔다.

명절 때면 잊지 않고 안부를 전해주는 고마운 제자이긴 하지만, 이번 안부 문자는 반갑지가 않았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제자들과 언제나 연결할 수 있는 첨단 국가에 살지만, 바이러스 공포로 집 밖에 나가지 못하는 나라에 살고 있는 현실이 부끄러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