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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기고] '슈퍼맨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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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기고] '슈퍼맨이 돌아왔다'
  • 이성용 교수(강남대, 사회학)
  • 승인 2015.03.02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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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들의 정체성 상실 & 공포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일요일 저녁 엄마와 아이들이 시청을 고대하는 최고의 예능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2014년 KBS 연예대상뿐만 아니라 다수의 상을 받았다. 시상식에서 진행자는 여성이 그간 전담해왔던 가사·육아·요리 등 일상적인 가정생활 속에 아빠들을 끌어들여 오늘날 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아빠 상을 보여주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런데 아빠들은 좀 불편하다.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청자리에서 슬쩍 빠져 도망치곤 한다. 왜 그럴까?

우선, TV 속 '슈퍼맨'들의 행동이 대부분의 평범한 아빠들에게는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일과시간에 나와서 엄마대신 자녀들을 데리고 병원에 간다?, 아내에게 휴가를 주고 자녀를 데리고 여행을 떠난다?. 물론, 가능은 하다. 하지만 그 뒷감당은?. 생각조차 하기 싫다.

아마 TV프로그램속 '슈퍼맨' 행동이 가장 가능한 직업은 대학교수일 것이다. 그렇다면, 수시로 자녀 일로 연구실을 비우고 학교에도 잘 나오지 않는 '슈퍼맨' 교수를 동료교수들과 학생들은 어떻게 볼까. 만일 대학에서 구조조정이 일어난다면, 그 1순위는 슈퍼맨 교수들이 될 것이다. 이러할진대, 해고가 용이한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부르짖고 있는 오늘날과 같은 시장경제 상황에서 일반회사에서의 슈퍼맨미래는 과연 어떠하겠는가.
 

 이성용 교수 (강남대, 사회학)
하지만 이보다 중요한 이유는 새로운 아빠의 상에 대한 반발이다. 이 프로그램은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이 증가함에 따라 오늘을 살아가는 아빠들에게 육아와 가사를 분담하는 새로운(슈퍼맨)아빠 상으로 전환할 것을 암암리에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전통적인 아빠상은 가족의 경제적 부양을 의미하는 부의 책임을 중시해왔지만, 새로운 아빠상은 부와 자녀간의 정서적 교감인 친밀성을 강조하고, 훈육방식도 훈계가 아니라 놀이와 돌봄에 무게를 두고 있다.

TV프로그램속 '슈퍼맨' 스타일 아빠로의 전환이 의미하는 바는 여태까지 해온 아빠역할이 잘못되었음을 엄마와 자녀들에게 인정하라는 바와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이는 그간 가져왔던 아빠의 자부심을 상실시킴은 물론, '아버지는 누구인가'란 부의 정체성 혼란마저 가져오게 한다.
 
더욱이 우리의 많은 아빠들은 엄한 부(父)의 이미지를 가진 가부장적 가족문화에서 성장해 '친밀성' 훈육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잘 모른다. 또 친밀성을 중시하다보면, 가족부양이란 부의 전통적인 책임을 소홀히 할 수도 있다. 오늘날 많은 젊은 아빠들은 직장에서의 퇴출이 가정에서의 퇴출로 이어질 수 있음을 잘 안다. 여기서 젊은 아빠들의 딜레마가 발생한다.
 
한국현실에서 친밀성과 부양책임을 완벽하게 해낼 수 있는 슈퍼맨 아빠는 어쩌면 거액의 출연료를 받으면서 자녀와의 친밀성을 보여주는 TV 속 연예인아빠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프랑스 사회철학자 장 보드리아르가 말한 것처럼, 이미지는 현실을 지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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