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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우리동네이야기 20] 성공회대 구드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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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우리동네이야기 20] 성공회대 구드인하우스
  • 박주환 기자
  • 승인 2015.01.16 1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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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양행 유일한 박사 별장

경인로에서 오류동을 지나 항동으로 들어가는 길목 왼쪽에 위치한 성공회대학교의 입구엔 구두인(Goodwin) 하우스가 있다. 과거 유한양행을 설립한 유일한 박사가 별장으로 사용했던 곳이다.

별장은 1936년 유 박사가 가족들을 위해 지은 것인데 건립 이후엔 사저로 이용됐으며 1956년 경 성공회대학교가 유 박사의 딸 유재라 여사로부터 이 일대를 매입해 성 미가엘 신학원을 이전시켰다.

이후 신학원장이 거주하던 이 건물은 1970년대부터 기도와 대화를 위한 집회시설로, 한 때는 외국인교수와 학생을 위한 기숙사로 사용되기도 했다.

현재는 성 미가엘 신학원의 교수이자 한국 신학계의 큰 스승으로 평가받는 구두인(Charles Goodwin 1961~1997) 신부를 기리기 위해 '구두인 하우스'로 명명하고 있다.

학교 측 관계자는 "지금은 이곳에서 거주하는 사람은 없고 신학연구원의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유일한 박사는 미국 유학과 사업을 통해 자금을 모아 민족의 경제적 자립이라는 뜻을 품고 1926년 유한양행을 설립했으며 의약품 생산과 함께 위생용품, 농기구, 염료 등을 수입하는 등 민중의 기본적인 생활을 위한 경영을 우선시 했던 인물이다.

1965년 개교해 1966년 구로구 항동으로 이전한 유한공업고등학교는 경기도권역은 물론 구로지역의 교육에도 많은 영항을 미쳤는데, 이는 유 박사가 민족의 실력 향상을 위해 의·식비 및 학비를 무료로 제공하는 학교로 1952년 설립한 고려공과기술학교를 전신으로 하고 있다.

유 박사는 최근 경영주들의 이른바 '갑질 논란'이 사회적 문제로 불거지면서, 기업의 사회적 환원과 노동자를 중시한 경영철학으로 세간의 재조명을 받고 있기도 하다.

민족의 앞날을 염려해왔던 유 박사의 마음 때문이었을까. 유 박사의 별장은 1972년 유신헌법이 선포된 이후 민주화를 위한 젊은이들의 연구집회 장소로 이용됐다.

당시 한국기독교학생회의 나상기 씨는 이곳에서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신입회원 약 20여 명에게 유신헌법의 반대를 주장하는 등의 활동을 했다는 사유로 이른바 민청학련 사건의 관계자로 지목 돼, 20년 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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