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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우리동네이야기1] 총탄 맞은 문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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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우리동네이야기1] 총탄 맞은 문인석
  • 박주환 기자
  • 승인 2014.03.11 12: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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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되기 40년전만해도 포도밭 양계장 널려

고척2동 주민센터와 고척고등학교 사이에는 3개의 마을이 모여 살았다. 큰 덕(德), 의 의(義)자를 쓰는 덕의리부터, 고려말 옹주의 묘가 있다는 능골, 일제강점기 공장의 사택들이 모여 있었다는 삼공구까지.

이 마을엔 40여 년 전만 해 포도밭과 양계, 양돈장이있었다. 고척고등학교가 바로 양돈장이 있던 곳이다. 주민센터에서부터 올라오는 길엔 포도밭과 양계장이 많았다.

마을을 구분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고척고등학교 뒷산의 능골정에서 굽어보면 고척 대우푸르지오아파트 부근이 덕의리, 한일유앤아이 아파트가 있는 곳이 능골, 그 아래 삼익아파트를 지나며 삼공구였다.

이 지역의 재개발이 시작된 건 1970년대 초인데 그 이전엔 약 150가구의 주민들이 정답게 모여 살았다. 주로 경 씨, 한 씨 가문과 평산 신 씨 들이 일가를 이루고 살았다. 한성아파트의 진입로를 따라 올라가면 평산 신 씨의 묘역도 있다. 이곳의 문인석은 그 크기가 꼭 당시 성인 어른만하다. 6.25 때 사람으로 오인돼 총탄을 맞은 흔적도 있었다.

재개발 전후로는 마을의 가구 수가 급증했다. 한국철강, OK산업, 독립산업 등에 다니는 직장인들이 단칸방을 얻어 살림을 시작했다.

덩어리라고도 불렸던 덕의리 인근 마을은 마을 이름처럼 인심이 아주 좋았다고 한다. 음식을 서로 나눠 먹는 건 일상이고 세입자의 방에 문제가 생기면  고칠 때까지 옆집에서 공짜로 머물기도 했다.

주민들이 친해질 수밖에 없던 것은 한 해 동안 함께 모이는 횟수가 많았기 때문인데 정월대보름, 삼짇날, 칠월칠석, 팔월대보름, 10월 상달 등에 함께 제를 지내고 부추 칼국수 등을 만들어 나눠먹었다.

특히 매년 10월 상달엔 우렁바위에서 도당제를 지냈다. 지금도 이원영(80) 할머니를 비롯한 마을 주민들은 고사를 지내고 있다. 이 할머니는 신 씨 집안에 시집 온 이후로 매년 정월 초하루와 10월 상달, 두 번은 꼭 찾아간다고 했다.

도당제는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다. 제사를 주관하는 제주는 고사를 지내기 3일 전부터 고사 당일과 그 이튿날까지 5일 동안 부정을 피하기 위해 몸을 함부로 굴리는 것을 삼갔다고 한다. 목욕재개하고 술을 입에 대지 않는 것은 물론 부부합방도 금했다고 한다.

우렁바위의 본래 이름은 울음바위다. 언제부터 울음바위라고 불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라에 문제가 생길 때면 바위가 소리를 내며 울었다고 해서 울음바위다.

이 바위는 현재 구로올레길 계남근린공원 근처를 따라 올라가면 양천구 방향에 보존돼 있는데, 원래 위치는 이곳 바로 옆 신정산 정상 소나무가 우거진 곳이다.

덕의 경로당 한상진 회장은 "목동아파트 재개발 전에 그게 논밭이었는데 안양천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이 계곡을 타고 올라왔다"며 "물이 모여서 좁은 곳을 지나가면 물살이 강해지는 것처럼 바람이 바위사이를 지나가니까 윙윙 소리가 났다"며 우렁바위가 울었던 이유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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