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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희망읽기 16] 지역여론과 지역사회 경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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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희망읽기 16] 지역여론과 지역사회 경쟁력
  • 장호순교수(순천향대,신문방송학)
  • 승인 2013.05.10 13: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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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 교수들과 점심식사를 하는 도중 학교급식이 화제에 올랐다. 대학생들의 구내식당 음식이 초등학교 급식만도 못하다며 한 교수가 불평을 하자, 다른 교수가 그렇게 초등학교 급식이 잘 나오냐며 의아해 했다. 자기 자녀 학교의 급식은 상당히 부실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학교급식은 지역사회마다 차이가 큰데, 그 차이는 자치단체가 결정한다.

자치단체에서 넉넉하게 보조금을 주는 지역의 학교급식과, 그렇지 못한 지역의 학교급식은 다를 수밖에 없다. 일부 지역은 지원조례를 제정해, 급식비 지원과 더불어 친환경 급식까지 제공하고 있다.

종전에는 지역 간의 격차가 주로 산업적이고 물리적인 측면, 즉 기업체, 학교, 병원, 도로 등 주민이 공동으로 이용하는 시설을 통해 나타났다. 그런데 지금은 학교급식처럼 지역주민 개개인에게 직접 돌아가는 사회복지 혜택에서도 차이가 발생하고 있다. 학교급식 뿐만아니라 출산보조금, 노령연금 등도 지역마다 격차가 크다. 노령연금의 경우, 중앙정부가 70%, 지방자치단체가 30%를 부담해야 하는데, 재정이 부실한 자치단체는 노령연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이러한 지역 간의 격차를 줄이고, 모든 지역사회가 균등하게 잘 살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중앙정부의 주요 임무이다.

지금까지 그런 격차를 줄이는 방식은 주로 시설지원으로, 도로나 교량의 건설, 혹은 행정수도이전이나 도청이전처럼 물리적인 방식이었다. 지역 정치인들의 선거공약도 주로 도로, 교량, 공항 등 지역주민들에게 번듯하게 자랑할 수 있는 과시형 업적 중심이었고, 지역주민들도 그러한 것들을 지역발전의 상징으로 삼았다.

그러나 지역주민의 삶의 질이나 사회복지 수준이 향상되지 못한다면, 고속도로 건설이나 첨단산업단지 유치도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그런데 지역주민 개개인의 삶의 질을 높이는 문제는 쉽지 않다. 우선 동일한 지역사회 내에서도 주거지역이나 연령층에 따라 당면한 문제가 다르기 때문이다. 지역 청년층들은 좋은 일자리를 요구하고, 장년층들은 노인취업 기회확대를 요구한다. 도심거주 학부모 세대는 교육환경이 가장 큰 불만이고, 외곽거주 노인층들은 의료시설 접근성이 불만이다. 모두가 살기 좋은 지역사회가 되려면, 지역주민의 다양한 요구를 세밀히 파악해 수용하고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지역사회의 경쟁력을 물리적이고 외형적인 하드웨어(hardware)에서 찾았다면, 이제는 지역사회의 다양성을 파악하고 거기에 맞는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대응책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소프트웨어(software)가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지역사회의 다양한 요구와 의견이 표출되고 다듬어지는 여론형성과정이 튼튼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지역사회에는 여론이라는 것이 드물다. 농어촌 지역의 경우, 지역여론이 지역감정이라는 획일성으로 매몰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대도시의 경우, 지역에 대한 무관심으로 여론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여론"이라는 것은 서구민주주의 사회에서 도입된 외래 시스템이 아니라 한국 고유의 전통적 관습이자 제도였다. 조선시대에는 여론이라는 말과 공론(公論)이라는 말이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한 상소(上疏)에는 왕에게 고집부리지말고 여론을 따르라고 요구하는 내용이 발견된다. "나라를 잘 다스리는 이는 반드시 공론을 밝게 펴서 막힘이 없도록 한다. 공론이 막히고 펴지지 않으면 국가의 원기가 막히게 되어 손발-어깨-허리가 말을 듣지 않게 되므로, 人主(임금)는 제 뜻을 굽히고 공론을 따르는 것이니, 이가 곧 원기를 보호하고 국체를 보전하는 소이이다."

이율곡도 "언로가 열리느냐 닫히느냐에 국가의 흥망이 달려있다"고 주장하면서 "먼저 폐법을 개혁하여 민생을 구출하여야 하는데, 폐법을 고치려면 언로를 넓혀 선책(善策)을 모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론을 중시한 덕분에 조선왕조는 내외적으로 끊임없는 폭동과 침략을 받았지만 무려 500년 동안 정치-경제-문화적 자존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었다. 조선이 일제식민지로 전락한 것은 사색당쟁으로 여론정치가 퇴색해 국력이 쇠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지역사회는 여론이 없어도 망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런 지역사회는 경쟁력을 갖지 못하고, 사회복지 수준도 열악할 수밖에 없다. 우리 지역 아이들에게 질 좋은 학교급식을 제공하기 위해서라도, 지역여론을 활성화해야 한다. 이율곡이 말한대로 지역의 "언로를 넓혀 선책을 모으는" 지역사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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