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4-19 09:21 (금)
[지역희망읽기 8] 원칙과 소통
상태바
[지역희망읽기 8] 원칙과 소통
  • 장호순교수(순천향대)
  • 승인 2013.01.08 14: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학교수는 젊은 세대들과 소통하는 직업이다. 세대간의 단절이 심한 요즘, 50대 대학교수가 20대 초반 학생들과 소통하기는 쉽지 않다. 그중 가장 힘든 것이 성적불만을 처리하는 일이다. 학기말 성적을 고지하고 나면 항상 거쳐야하는 과정이다. 학생들의 이의제기 방식은 다양하다. 성적이 너무 낮아 취업을 못할 것이라는 과장형에서부터, 장학금을 못 받아 학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는 협박형, 내 점수가 왜 그렇게 나왔는지 알고 싶다는 호기심형 등.

학생들의 성적 이의가 접수되면 필자는 곧바로 확인 작업에 들어간다. 간혹 필자의 실수로 채점이 잘못되었거나, 점수가 잘못 기입되는 경우도 발견된다. 그럴 땐 학생에게 사과하고 바로 정정을 해준다(그러나 그런 경우는 지난 15년 동안 딱 두 번 밖에 없었다). 그 외 학생들에게는 점수가 달라지지 않는다.

필자는 평소 학생들에게 자신의 성적을 확인하고 점검하라고 권유한다. 동시에 성적평가의 공정성도 주지시킨다. 필자의 연구실에도 자주 찾아오고 친하게 지내는 학생들도 더러 있지만, 점수에는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학점평가는 교수가 학생들의 시험과 과제물을 근거로 사전에 공지된 방식으로 산출하는 것으로, 학생과 교수와의 인간관계와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는 것을 나의 제자들은 잘 알고 있다.

필자가 학생들에게 성적점검을 권유하는 이유는 교수와 학생 사이의 민감한 문제를 솔직하고 진지한 소통으로 해결하는 기회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성적이의가 제기되면, 필자는 그 학생의 답안지와 과제물을 다시 검토한다. 그리고 답변 메일을 통해 최종 학점이 나온 과정을 상세히 설명해준다. 어떻게 점수가 계산되었고, 어디에서 감점이 되었는지 알려준다. 다른 학생들의 점수와는 어떻게 그리고 왜 다른지도 설명한다.

그리고 학생 개인적인 사유는 그 사정이 아무리 딱하더라도 학점에 반영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학점평가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해치기 때문이다. 성적 이의제기를 한 학생의 학점을 변경한다면 다른 모든 학생들의 점수도 함께 바꾸어야 한다고 알려준다.

필자의 이러한 설명에 학생들은 대부분 수긍하는 답장메일을 보내온다. 그리고 비록 성적에는 만족 못하지만, 자신의 성적을 재검토 해준 점을 고마워한다. 떼쓰기로 시작했지만- 적어도 필자의 입장에선 - 소통을 통한 상호 이해로 귀결된다.

새해가 되면서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새로운 출발을 다짐한다. 소통과 통합을 약속한 대통령 후보가 당선되면서 새해에 대한 기대감은 그 어느 해 보다 큰 것 같다. 지난해 대선을 치르며 사회적으로 많은 분열과 갈등 양상을 보였지만, 승자나 패자나 대부분 소통을 통한 사회적 통합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소통이란 것은 매우 어렵고 힘든 기술이다. 세상에는 많은 "달인"들이 있지만 "소통의 달인"은 없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우선 소통은 늘 새로운 도전이다. 예를 들면, 똑같은 아내와의 대화라도 어제의 대화와 오늘의 대화가 다르다. 어제 한 얘기를 오늘 또 하는 순간 소통은 중단된다. 반복훈련을 통한 달인의 탄생이 소통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반복적인 훈련이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장년층과 청년층 사이 소통이 단절된 이유는 두 세대 모두 소통지향적인 교육과 훈련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50-60대는 군사독재시절의 군국주의적 교육방식의 산물이다. 그래서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고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요즘 젊은이들은 신자유주의 경쟁위주 교육방식의 산물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할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다. 소통교육을 받은 세대들이 사회적 주류로 등장하기 전까지 한국사회는 많은 "불통"을 경험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나름대로 학생들의 성적불만을 원칙을 지키며 소통으로 해결하려 노력해왔다. 이번 학기 성적 이의제기를 한 나의 제자들은 아마도 여전히 불만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말이 통하지 않는 "불통" 교수라고 비난하지는 않기를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